[신동호가 만난 사람]농촌을 컨설팅하는 임경수 (주)이장 대표
ㆍ“녹색성장이 사회적 기업 더 어렵게 한다”

기업은 영리 목적을 추구하는 조직이다. 이윤을 위해서라면 법을 위반하지 않는 범위에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는 것이 기업이 지닌 이기적 본성이다. 착한 사람들이 모여 착한 일을 하는 데라면 기업이 아니라 비영리기구(NPO)라고 해야 옳다. 최근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이 강조되고 있지만 이 역시 지속 가능한 기업환경을 만들고 기업의 가치를 높이려는 이기적인 기업 유전자의 또 다른 표현형일 뿐이다.
그런데 이게 뭔가. 사회적 기업(SE, Social Enterprise)이라고 한다. 기업은 기업인데 영리 목적이 아니라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는 조직이라는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취약 계층에 일자리나 사회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말하자면 사회적으로 ‘착한 일’을 하는 기업이라는 뜻이다. 사회적 기업은 1970년대 유럽·미국 등에서 시작된 것으로, 우리나라는 2007년 사회적기업육성법 제정과 함께 도입됐다.
㈜이장은 사회적 기업이다. 직원 30명, 연 매출 30억원 정도의 작은 규모지만 놀라운 회사다. 기업의 존재 이유인 이윤보다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면서도 10년 동안 생존했고, 거기에 한술 더 떠 지속적으로 성장해 온 점에서다.
이장은 ‘생태가치를 실현하는 사회적 기업’을 표방하면서 생태마을 조성이나 농촌 컨설팅 등 사업을 주로 한다. 농촌이나 지역을 살리되 그것을 생태적으로 살리겠다는 것은 기업의 일이 아니라 운동의 몫처럼 보인다.
아닌 게 아니라 이 회사의 임경수 대표이사는 기업을 운동, 운동을 기업처럼 하는 사람이다. 생태공학 박사로서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실현하는 방법의 하나로 기업을 택했고, 농촌을 무대로 삼았다. 그는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1988년 서울대 공업화학과를 졸업했다. 386세대로서는 돌연변이 유전자를 지닌 셈이다.
임 대표를 만난 까닭은 두 가지다. 기업의 사회적 역할이 중요하게 등장한 마당에 거기에 전념하는 사회적 기업의 성공 모델을 찾기 위한 것이 그 하나다. 다른 하나는 아이 울음소리가 끊긴 농촌을 살리는 길을 묻기 위한 것이다. 둘 다 쉽지 않은 일이다. 지난 11월 28일 그는 서울 대방동 여성플라자에서 ‘즐거운 귀촌’이라는 주제로 강연과 설명회를 가졌다. 강연에 앞서 그를 만나보았다.
요즘 영리기업도 힘들다고 하지 않습니까. 사회적 가치까지 생각하면서 기업을 경영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요.
“사회적 기업 인증을 받은 2007년부터 흑자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그 전에는 사회적 기업이라는 것을 몰랐고, 사회적 기업과 관련된 사람도 알지 못했죠. 그냥 환경과 관련된 제대로 된 직장을 만들어 보자고 10년 전부터 시작한 것인데 그때는 나 스스로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이게 맞는 건지 확신도 없었고요. 그런데 사회적 기업이 되니까 덜 외로워진 것이죠.”
어떤 일을 주로 합니까.
“사회적 기업은 노동부에서 취약계층 고용과 서비스를 목적으로 만든 제도이지 않습니까. 법적으로는 취약계층 고용, 취약계층을 위한 서비스, 이 두 가지를 병행하는 것, 기타 등 네 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이장은 ‘기타’에 해당하는 사회적 기업입니다. 취약계층이 아니라 농촌 분야의 일을 합니다. 농촌 마을을 컨설팅하고 생태공동체마을을 조성하는 게 주된 사업이죠.”
이장은 강원도 화천군 신대리 마을을 비롯해 농촌 마을 100여 곳을 컨설팅했다. 마을 만들기 사업은 농촌의 환경성과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예를 들어 신대리 마을 88가구는 오리농법을 통해 유기농 쌀을 생산하면서 활로가 열렸다. ‘오리일꾼 일터보내기’와 같은 행사를 통해 도·농 교류가 이뤄졌고, 도·농 교류는 또 다른 수요를 낳았다. 마을에서 생산한 콩으로 두부와 메주를 만들자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는 것은 물론 ‘메주 만들기’와 같은 다양한 농촌체험 행사로도 이어질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1999년 연간 방문객 0명, 농산물 직거래 수익 960만원이던 것이 5년 후 방문객 1만명, 농산물 직거래 수익 5억원의 마을로 바뀌었다고 한다.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을 시작했습니까. 도시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이 생태주의자가 된 까닭이 궁금합니다.
“중학교 때 보이스카우트를 하면서 쓰레기를 주우러 많이 다녔어요. 그게 아주 귀찮았는데 어느 날 선생님이 앞으로는 썩는 비닐이 나올 거니까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어요. 그때부터 환경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환경공학과가 있는 대학이 서울시립대와 부산수산대(지금의 부경대) 두 곳뿐이어서 거기 가겠다고 하니까 학교에서 난리가 났어요. 결국 서울대에 2지망으로 붙은 공업화학과를 다니게 된 거죠.”
그보다는 원래부터 ‘생태 유전자’를 지닌 것처럼 보이는데요.
“그런 셈이죠. 어머니께서 내가 어렸을 때 콩을 심어 놓고 싹이 올라오는 걸 몇 시간씩 쭈그리고 앉아서 보더라고 말씀하셨어요. 또 초등학교 때 북아현동에 살았는데 포장된 길보다는 흙길로 돌아서 다니기를 좋아했고, 매일같이 뒷산인 안산에 올라가서 놀곤 했으니까요.”
임 대표는 서울대 환경대학원에서 환경 공부를 계속했다. 석사학위 논문도 대기오염에 관한 것이었다. 그런데 박사과정에서 농업 쪽으로 관심을 틀었다. 그는 다른 인터뷰에서 “환경문제를 공학적으로 해결하는 사람이 되면 환경문제가 많이 발생해야 법을 벌어먹고 사는 이상한 꼴이 되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말했다. 그보다는 농업이 환경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환경문제 해결에 고민을 많이 한 것으로 보아서는 환경운동가가 됐을 법한데 왜 기업을 하게 된 겁니까.
“환경운동은 (환경 파괴를) 반대하는 것이니까 거기서 벗어나 환경을 만들어가는 역할을 하고 싶었고, 그 중심이 농업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박사과정에서 농업을 택한 것도 그 이유입니다. 그런데 농업 공부를 해 보니까 기술적 부분에 치중하는 느낌이었어요. 농촌을 총체적으로 바꿔야 하는데 그건 너무 큰일이 아닙니까. 마을을 하나씩 하나씩 바꿔 나가야겠다고 생각한 것이죠.”

“내가 회사를 운영해서 돈을 버는데 남과 경쟁해 상대편을 죽이면서까지 돈을 벌지는 않겠다는 게 내 생각입니다. 사회적 기업은 경쟁 논리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는 거죠. 경쟁보다 연대가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1999년에 인터넷 이장을 창업했군요.
“처음에는 전국의 유기농 농산물을 모아 전자상거래를 해 보려는 것이었습니다. 벤처 붐이 일 때 대학원 연구실에서 환경과 관련한 벤처를 만들어 보자고 한 게 구체화된 것이죠. 유기농 공부도 했고 유기농생산자정보시스템 용역을 하면서 전자상거래의 노하우도 갖췄으니 할 만했어요. 그런데 결국 실패했어요. 유통에 대한 개념이 없는 데다 자본이 많이 드는 사업이니까요. 궁여지책으로 100여 명의 유기농산물 생산자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서울대 후문에다 유기농 도시락 전문 배달점인 ‘이장네밥집’을 열었어요. 그것도 3개월만에 망했습니다.”
농촌 마을을 바꿔 나가겠다는 임 대표의 꿈은 여기서 꺾인 게 아니라 새롭게 시작된다. 묘한 인연이 30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어 그에게 다가온 것이다. 호주의 병리사 빌 모리슨이 1970년대에 충남 홍성을 찾았다. 그는 매년 벼를 수확하는 홍성 지역의 논을 보고 언제부터 그런 방식으로 농사를 짓느냐고 물었다. 사람들은 1000년도 더 됐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호주와 달리 매년 같은 땅에 같은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이런 농법에 착안해 모리슨이 창안한 개념이 ‘퍼머컬처’다. 지속 가능한(permanent) 농업(agriculture)이라는 뜻이다. 첫 사업에 실패한 임 대표는 호주 크리스털워터스라는 생태마을을 찾아 퍼머컬처 디자인 코스를 수료했다. 돌아와서는 홍성으로 내려가 풀무원농업고등기술학교에 유기농 전문 과정을 만들고 직접 가르치는 일을 했다.
퍼머컬처 디자인 원리는 어떤 것입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연을 담게 하는 것입니다. 자연의 특징은 다양성입니다. 숲이 병충해에 강한 것은 자연의 다양성 때문이지요. 솔잎혹파리가 확산되는 것은 소나무를 많이 심었기 때문입니다. 생물자원을 활용하는 것도 중요한 원리 가운데 하나예요. 이를테면 닭을 밭에 풀어놓으면 경운기 역할을 합니다. 자운영은 질소를 고정하고, 지렁이는 비료를 만들지요. 그 다음은 규모를 점검하는 것입니다. 투자와 규모 등이 적정해야 합니다.”
임 대표는 2001년 이장을 주식회사로 전환하면서 본격적으로 농촌 마을 만들기 사업에 뛰어들었다. 사무실도 춘천으로 옮겼다. 강원도가 마을에 5억원씩 지원하는 새농어촌건설사업 등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식회사 형태를 취한 까닭은 전문 인력을 확보하기 쉽고, 일에 대한 정당한 대가와 보상을 해 줄 수 있으며, 의사결정을 빠르게 내릴 수 있어서라고 한다.
이장이 일반 회사와 다른 점은 무엇입니까.
“직원이 곧 주주이고, 자기계발을 중시하며, 근무와 경영을 완전히 팀별로 자율에 맡기는 시스템입니다. 그렇다고 해고가 전혀 없는 회사는 아니죠. 그동안 많은 친구가 회사를 떠났는데, 처음에는 바보스럽게 직원을 해고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죠.”
시행착오가 적잖았겠네요.
“내가 갖고 있는 이상적인 조직과 일반 회사 사이에서 절충점을 찾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회사를 공동체로 보았습니다. 직급별이 아니라 버는 대로 나눠 쓴다는 원칙이었죠. 직원을 아이 있는 기혼자, 아이 없는 기혼자, 미혼자 이 세 가지 기준으로만 나눠서 봉급을 정했습니다. 이런 게 합리적이거나 민주적인 것은 아니었어요. 그래서 일반 회사 체계를 갖고 오고, 그러면서 나름대로의 가치를 지키려고 하고…. 그런 과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10년 동안 회사를 꾸려본 소감은 어떻습니까.
“회사라는 데가 사회에도 보탬이 돼야 하고, 젊은 사람들이 자기 성장도 할 수 있어야 하고 돈도 벌 수 있어야 하는 것인데 그게 정말 가능한 일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장은 지난 3월 충남 서천군 등고리에 산너울 마을 34가구를 조성하고 입주까지 마쳤다. 이장이 만든 1호 생태공동체마을이다. 현재 경남 하동과 전남 순천에 생태공동체 마을을 조성 중이며, 본사가 있는 경기도 안성 등 수도권에도 생태공동체마을을 추진하고 있다.
생태공동체마을 조성은 규모가 큰 사업인데 전원주택단지와는 어떤 차이점이 있습니까.
“설계에서 운영까지 모든 의사결정에 입주자가 참여합니다. 입주자들이 월례회의인 ‘달모임’을 통해 이런 일과 함께 생태마을과 공동체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공유하는 것이죠. 단열 시공과 태양광에너지, 펠렛보일러, 중수이용변기 등과 같은 생태적 기반시설을 적용합니다. 복합문화회관, 취미실, 야외공연장, 어린이놀이터, 공동텃밭 등 공동시설도 갖추고요. 땅에 금을 그어서 분양하는 방식이 아닌 거죠.”
조건이 까다롭고 절차가 번거로워 입주자 모집이 쉽지 않았겠네요.
“생태마을을 지분제로 해서 분양하면 물론 쉽겠지요. 산너울 마을은 입주한 뒤에도 개인적인 매매는 못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마을을 떠날 때는 마을위원회에 팔도록 돼 있지요. 그래서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그 과정에서 금을 그어 주고 분양하자는 얘기가 나오고, 직원들 사이에서도 논쟁이 벌어져 갈등이 많았습니다.”
사업하다 보면 원칙을 지키기 어려울 때가 있지 않을까요. 스스로 사회적 기업이 이윤 추구와 가치 추구 사이의 줄타기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하나가 무너지면 다 무너집니다. 가치를 키우는 게 더 중요합니다. 사실 많이 무너지기도 했죠. 어쩌면 여전히 절충해가는 과정이 아닐까요. 내가 회사를 운영해서 돈을 버는데 남과 경쟁해 상대편을 죽이면서까지 돈을 벌지는 않겠다는 게 내 생각입니다. 사회적 기업은 경쟁 논리만으로 살아남을 수 없는 거죠. 경쟁보다 연대가 더 중요합니다.”
연대 대상은 어디입니까.
“정부, 다른 사회적 기업, 시민단체(NGO)가 될 수 있습니다. 사회적 기업은 이러한 연대의 대상이나 고민과 애정이 많은 분들이 고객입니다. 시장에서 경쟁하지 않아도 이들이 지지하면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불특정 다수를 상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관심 있는 3%만 알고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관심 있는 분들이 찾아와요. 이런 분들과 연대를 통해 사회적 기업이 살 수 있는 겁니다.”
정부가 사회적 기업을 육성하고 지원하는 것은 당연하다. 정부가 해야 할 일, 못하는 일을 대신해 주기 때문이다. 이장과 같은 사회적 기업은 일자리 창출이나 저탄소 녹색성장과 같은 정부 시책과도 부합한다. 그런데 사회적 기업이 더 어려워졌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들리는 것은 어째서일까.
정부의 저탄소 녹색성장으로 더 어려워진 점은 없습니까.
“저탄소 녹색성장의 기본 개념은 국가 경쟁력을 높이자는 겁니다. 기술 개발이 중요하고, 이를 정부나 대기업이 했으면 좋겠다는 기조거든요. 작은 일을 하는 사람들한테는 정부의 지원이 미치지 않는다는 얘기죠. 과거에 태양광발전 시설을 달겠다면 신청하는 데가 별로 없었습니다. 산너울 마을 만들 때만 해도 그랬어요. 지금은 큰 사업, 눈에 띄는 사업에 먼저 지원이 갑니다. 그래서 더 어려워진다고 하죠.”
국가 경쟁력도 중요하고 기술 개발도 필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생태적이라고 할 때 누구나 쓸 수 있는 기술, 다시 말하면 적정기술이 많아져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하고 있는 기술 개발은 하이테크입니다. 아주 비싸고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것이죠. 적정기술을 개발하고 보급하려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기술이 써먹을 데가 없는 겁니다.”
인터뷰 후 임 대표는 예정된 귀농 강의를 시작했다. 강의는 소박하게 귀농하기, 농촌마을에 귀촌하기, 전원마을에 귀촌하기, 지역에 귀촌하기 등 네 장으로 나눠 진행됐다. 그는 “내년부터 700만명에 이르는 전후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시작된다”면서 “은퇴자는 도시에서 할 일이 없다. 이들은 농촌으로 가게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도시 생활자가 농촌에 가면 농사 외에도 할 일이 많다는 것이다.
귀농·귀촌자가 많아지면 농촌공동체가 복원되고, 공동체가 회복되면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된다. 임 대표가 ‘커뮤니티 디자이너’를 자처하는 까닭을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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