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색/공동체마을탐방

[스크랩] (15)황무지에 일군 이상향 오로빌-(중)나눔과 자립, 진화하는 도시

비오동 2009. 10. 9. 14:19

   나눔과 자립은 오로빌의 경제가 추구하는 두 마리 토끼이다. 오로빌은 사유하지 않는 경제, 화폐 교환 없는 마을로 설계 되었고 그 원칙은 여전히 유효하다. 오로빌은 모든 오로빌리언의 기본적 요구를 물품으로 제공하며, 땅과 건축물은 모두 재단의 소유이다. 물론 이런 원칙들이 다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공동체가 커지고 주변 경제환경이 변하면서 오로빌도 영향을 받고 있다.
   오로빌리언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그들은 이곳 기업에 취업하거나 봉사 활동을 하고 그 대가로 기업이나 공동체로부터 지속비(월급)와 생필품을 공급 받는다. 이곳의 기업에 일하는 경우 월평균 6000루피(15만 원) 정도 받는다. 한 사람이 매달 공동체에 내야하는 기여금은 1200루피(3만 원). 대부분 기여금을 내고 나면 생활이 빠듯하다. 자녀가 외지의 사립학교에 진학할 경우 밖으로 나가 돈을 벌 수밖에 없다. 개인이 낸 기여금과 오로빌의 기업체들이 기부한 돈이 공동체를 움직이는 동력이다. 아직 완전한 자립을 이루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유네스코 등으로부터 지원금을 받는다.

 

 


나눔의 공간 푸투스, 솔라키친

나눔 경제의 대표적 예는 푸투스와 솔라키친에서 볼 수 있다. '모두를 위하여'란 뜻을 지닌 생필품배급소 푸투스는 오로빌리언에게 '일용할 양식'을 제공한다. 쌀과 야채, 과일, 가공식품 등 식료품과 기타 생필품 등이다. 필요한 물품을 구하는 데 화폐를 사용하지 않는다. 오로빌리언들은 자신이 가져가는 상품의 값이 얼마인지도 정확하게 모른다. 물론 관리자들은 그들이 가져가는 생필품을 기록하고 액수로 환산한다. 매달 개인별 사용액이 체크된다. 자신의 기여금보다 많이 쓴 이도 있고 적게 쓴 이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들쑥날쑥한 씀씀이지만 전체으로 계산해 보면 수지가 맞춰진다고 한다. 몇 달을 계속해서 과도하게 사용량이 많은 세대는 불러 상담을 한다.

 

 


솔라키친은 오로빌의 공동식당이다. 이곳은 이름처럼 태양열 조리로 잘 알려져 있다. 이 건물 옥상에는 반경 15m나 되는 집열접시가 태양열을 모은 뒤 주방에 증기로 공급한다. 맑은 날에는 600㎏의 증기를 만들어 2000인 분의 식사를 마련할 수 있다. 아침 7시30분부터 시작되는 점심식사 준비에는 40여 명의 직원이 매달린다. 침묵과 조화 속에서 830인 분의 점심을 준비, 이 중 400인 분은 학교와 푸투스의 배식소로 배달한다. 저녁은 80인 분을 만든다.

음식의 재료는 오로빌의 농장에서 나오는 유기 농산물을 주로 사용한다. 완전자급이 되지 않아 방갈로르에 있는 유기농장에서 모자라는 식재료를 사온다. 마더가 제안한 자급자족은 아직 요원하다. 식사를 같이하는 것은 공동체 정신에도 부합된다. 점심시간 솔라키친의 식탁을 가득 메운 오로빌리언들은 음식을 통해서 한가족이라는 연대감을 확인한다. 솔라키친의 책임자 앙겔리카(독일)는 "오로빌 사람에게 함께 음식을 먹는 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돈 걱정을 하면서 밥을 먹어야 하는 현실은 답답하다"고 말한다. 식단은 완전한 채식이다. 이곳에 있는 며칠 동안 비만인 사람을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자급자족의 미래 생태농업

오로빌의 농업은 출발부터 험난했다. 뜨겁고 건조한 황무지는 엄청난 노동력을 요구했다. 농부들은 나무를 심고 황무지를 개간하고 저수지를 만들었다. 새로운 세상을 개척한다는 사명감 하나로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초기의 열정이 서서히 식어가면서 농사일을 좋아하는 이들도 줄어들었다.

1994년 침체의 늪에 빠져 있던 오로빌 농업은 일대 전환점을 마련한다. 모든 농부들이 자원을 공유하고 생산과 가격을 조절하고, 공동기금 마련을 위한 농장그룹을 결성했다. 이들은 이코노미그룹을 설득해서 농업을 서비스 부서로 분류했다. 농부들이 생활보조금을 받을 수 있게 경제적 안전판을 마련한 것이다.
현재 오로빌에는 10개 농장이 43만여 평을 경작하면서 벼, 야채, 과일 등 을 생산하고 있다. 오로빌 농부들은 자급자족을 위한 부단한 노력과 함께 인근 원주민들에게도 유기농법을 전수하고 대규모 황무지 개간사업, 저수지 개발, 채소밭 가꾸기운동 등 외부지원 활동도 활발하게 펼쳐오고 있다.

디스플레인 팜은 3000여 평에 채소와 과일을 경작하는 소규모 농장이다. 물론 이곳도 다른 농장처럼 생태농업을 한다. 유기질 퇴비를 사용하고 순환적인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농장으로 들어서자 거름 냄새가 코를 찔렀다. 하지만 그 냄새는 곧 신선한 흙과 풀 냄새와 섞여 구수하게 바뀌었다. 농장 책임자 제프(오스트레일리아)는 허브 잎을 따서 먹어보라고 권한다. 박하 향이 입안을 가득 채우자 자연이 주는 싱그러운 느낌이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이 농장은 유기농법을 연구하고 개발해서 자체 생산뿐 아니라 산학 연계망도 구축하고 있다. 인도 각 지역의 농업대학과 연구기관에서 찾아와 견학하고 실습도 한다.

제프는 "아직 오로빌의 농업이 주민들에게 충분한 먹을거리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며 "앞으로 방가로르 등 고산지역과 연계해 농장을 개발하는 방법도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작별인사를 나누며 한국의 배추와 무씨를 보내줄 수 없느냐고 물었다.

 



자립경제 앞당기는 기업들

오로빌의 사업체는 사업 동기부터 다르다. 무조건적인 영리활동이 목표가 아니다. 사업체는 오로빌과 이웃을 위해 존재한다. 따라서 사적 소유는 없고, 관리인들이 아무리 잘 운영해도 개인적 이득이 없다. 엄밀한 의미에서 자본주의적 경제가 작동하지 않는다. 사실 1990년 중반까지만 해도 사업에 대해 부정적인 분위기가 강했다. 세계화 이후 이곳도 변화의 여파가 미쳤다. 사업이 일자리를 창출하고 궁극적으로는 커뮤니티 경제를 일으켜 자급의 동력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오로빌에는 현재 130여 개의 각종 사업체가 있다. 이들의 지난 1년간 생산액은 6억2000만 루피(155억 원)에 달한다. 수십 년의 역사를 가진 향 제조회사 마로마는 우수한 품질의 향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다. 옷과 빵, 공예품 등 오로빌의 특성을 잘 살린 사업체들이 자체 생필품을 생산할 뿐만 아니라 우수한 품질을 바탕으로 외부로 매출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이곳 사업체들은 이익의 30%를 공동체에 기부한다. 현재 50여 개 업체가 기부를 하고 있다고 한다.

15년 전 사업을 시작한 아쿠아 딘은 오염된 물을 정수하는 시스템을 연구해 왔다. 지금은 개발한 가정용 정수기를 유럽 시장에 내다 팔고 있다. 이곳에서 만든 정수기는 4단계의 필터를 거치는데, 바닷물도 담수로 바꿀 수 있다. 하지만 정수 과정을 거친 물은 깨끗해지지만 죽은 물이 된다. 그래서 물을 살리는 방법을 개발했다. 그것은 빛으로 음악을 주입해 살아 있는 물로 거듭나게 한다는 것. 유럽에 나가는 정수기에는 클래식음악을, 오로빌에 사용되는 것은 마더의 음악을 넣어준다.

이곳의 연구진들은 인류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좋은 물을 만드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들은 시간당 5000ℓ를 정수할 수 있는 대형 정수기를 만들어 오로빌의 40여 공동체, 솔라키친에 제공했다. 또 지난해는 쓰나미가 덮친 인도의 피해지역에도 무상으로 기증했다.

 



갤럭시 플랜과 진화하는 도시

오로빌의 도시계획을 이야기할 때 갤럭시 플랜을 빼놓을 수 없다. 1988년 인도 정부는 오로빌재단법을 만들고 오로빌 개발을 본격 지원하기 시작했다. 이때 프랑의 유명 건축가인 로제 앙제를 중심으로 마스터 플랜을 구축한 것이다. 이들은 마더가 구상한 국제, 주거, 문화, 산업 등의 4구역으로 나눈 원형의 도시를 '갤럭시'라는 개념으로 구체화했다.

이곳의 도시계획 일을 맡고 있는 조홍규씨를 만났다. 신세대의 활달함을 보이는 그의 첫마디는 오로빌은 영성 공동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예상밖이었다. "오로빌은 정신과 물질세계의 조화를 추구한다"면서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의 조화를 바탕으로 도시 형태가 구축되고 있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오로빌의 건축은 몽상계열의 건축방식에서 실용주의로 옮겨가고 있다고 한다. 공간의 효율적 활용을 위해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오로빌의 건축 디자인 원칙은 실험, 갤럭시와 유니트를 지향한다. 모든 건물이 동선이 이어지게 한다는 것이다. 초창기 다양하고 심미적인 건축물들은 이곳을 지구상에서 가장 뛰어난 '건축의 천국'으로 불리게 하기도 했다. 하지만 안전과 청결, 편리성 등 주택에 대한 욕구가 변화하면서 실용적으로 변모하고 있다. 무엇보다 용지문제가 가장 큰 요인이다.

마스터 플랜이 작동하면서 도시가 개발되기 시작했다. 개발 과정에서 자연보호 가치와 충돌하기도 한다. 도로 건설이나 기초 인프라 건설 계획을 두고 주거지 주변의 숲이 훼손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려는 주민들과 갈등이 불거지기도 한다. 또 주변 인도인 주거지의 난개발과 땅값 폭등이 어려움을 더한다. 오로빌 내부와 주변의 원주민 땅, 그린벨트 지역의 땅값이 너무 올라 매입할 엄두조차 못 내고 있다. 여기다가 세계 곳곳에서 이곳을 찾는 인파가 늘어나자 주변이 급격하게 관광지화 되기 시작했고 곳곳에서 난개발의 몸살을 앓고 있다. 이 일대 해안은 인도의 재벌들이 다 사들였다고 한다.


오로빌이 안고 있는 가장 큰 숙제는 경제적 자립이다. 오로빌의 느슨한 공동체적 경제구조가 세계화 시대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을 것인가. 일각에서는 외부의 지원이 오로빌의 홀로서기를 방해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어쨌든 오로빌은 그들이 추구하는 이상과 경제적 현실의 괴리 사이에서 고민 중이다.

뉴 푸투스 운영자 장 이브(프랑스)는 "지구온난화에서 보듯이 환경에 문제가 있는 경제는 지속가능성이 없다. 오로빌의 경제는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경제이자 나누는 경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로빌은 대안이 되고 앞으로 나아갈 것으로 확신한다"고 강조한다. '욕망의 만족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의식의 성장을 위한 경제'를 정의한 마더의 원칙이 세계화의 파고를 넘을 것이란 믿음이다. 오로빌의 자립과 나눔을 위한 경제는 물질만능의 시대,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 오로빌의 2세대 아사

이곳에서 태어난 2세대들에게 오로빌의 변화는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 인도인 남편, 두 살 된 딸과 함께 오늘의 오로빌을 사는 아사(36·사진)를 찾았다. 그의 부모는 프랑스계 미국인인데 아버지는 오로빌 개척기에 들어왔고, 어머니는 인근 퐁디셰리에서 NGO활동을 하다가 아버지와 만났다고 한다.

아사는 퐁디셰리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오로빌에서 유·소년기를 보낸 그에게 외부의 환경에 적응하는 데 문제가 없었을까.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문화 속에서 컸다. 외부에 적응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공동체 바깥의 학교에 진학해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었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 뒤 줄곧 오로빌에서 살고 있다. 삶의 고비마다 무엇인가가 자신을 오로빌에 머물게 했다고 한다.

초창기 정신이 퇴색되어 가는 것 같지 않은가, 번잡해지고 들뜬 느낌마저 드는 오로빌의 변화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내가 자라던 시절이 훨씬 좋았다. 우리가 거친 흙더미에서 뛰어놀았어도 부모들은 별 걱정을 하지 않았다. 지금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급격히 변화하는 세태에 우려감도 느낀다."

그의 세대가 부모들처럼 활동적이지 않다고 한다. "못 먹고 자라서 그런지 다이내믹한 열정이 없다. 간혹 함께 자랐던 친구들끼리 만나지만 오로빌의 미래에 대한 진지한 토론을 해보지는 못했다. 부모님들 같았으면 아마 밤을 지새웠을 것이다"며 부모 세대의 열정을 부러워 했다. 그는 자식도 오로빌에서 자랐으면 좋겠다고 했다. 하지만 오로빌의 교육에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이가 10~12살 때쯤에는 퐁디셰리에 있는 프랑스학교에 보낼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초창기 세대와는 다르다. 그러나 인간정신의 전진에 대한 믿음은 갖고 있다. 부모들은 이곳을 선택해서 왔지만 우리에게는 선택이 아니다. 부모 때문에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랐을 뿐이다. 우리가 이곳을 선택하지는 않았지만 오로빌이 우리를 키웠다. 이곳은 분명 우리의 고향이다." 그의 마지막 말이 의미심장했다.

출처 : 장병윤의 느티나무 그늘
글쓴이 : 느티나무 그늘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