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생/죽염

호골영토산방(湖骨嶺土山房)

비오동 2010. 8. 3. 12:08

 

 

명절 때는 모든 고속도로가 심하게 정체되지만 비교적 덜 밀리는 고속도로가 영남과 호남을 잇는 ‘88고속도로’이다. 광주와 대구 사이에는 혼맥(婚脈), 학맥(學脈), 상맥(商脈)이 별로 없어서 왕래할 일이 적었다. 이렇게 삼맥(三脈)이 약할 때는 풍류맥(風流脈)을 가동시켜야 한다. 풍류는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이지 않던가!

 

전남 장성에 있는 세심원(洗心院)과, 경북 청도에 있는 ‘호골영토산방(湖骨嶺土山房)’ 사이에는 요즘 영·호남의 풍류가 왔다 갔다 하고 있다. 청도읍 삼신산(三神山) 자락에는 황토와 편백나무로 지은 13평 크기의 자그마한 산방(山房)이 하나 있다. 이 산방 이름을 ‘호골영토(湖骨嶺土)’로 지은 데에는 사연이 있다.

 

산방 주인인 박복규(60)씨는 경상도 토박이이지만 보길도를 비롯한 전라도 섬들의 고즈넉한 풍광과, 톡 쏘는 전라도 음식, 그리고 판소리를 좋아한다. 한 20년 사업 관계로 외국을 돌아다닌 끝에 비로소 조국의 산하(山河)가 좋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중에서도 전라도 지역이 눈에 들어왔다고 한다.

 

그러면서 알게 된 사람이 장성의 축령산 자락에 있는 세심원 주인 변동해(53)씨이다. 세심원은 광주·장성 일대의 풍류객들이 모이는 살롱인데, 이 세심원의 방바닥은 축령산의 편백(扁柏) 나무로 깔아 놓았다는 점이 특징이다. 방에 들어가면 편백 특유의 나무 향이 진하게 풍긴다. 편백의 향은 머리를 상쾌하게 만든다.

 

세심원의 편백 향에 매료된 박복규씨는 장성 축령산의 편백을 청도로 가져다가 통나무와 황토로 이루어진 산방을 짓게 된 것이다. 산방의 골재는 호남에서 가져온 편백나무를 사용하였으니 ‘호골(湖骨)’이요, 황토는 영남의 흙을 썼으므로 ‘영토(嶺土)’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이치에 딱 맞는 이름이 아닌가! 비록 방 한 칸과 거실 한 칸 구조의 작은 산방에 지나지 않지만, 호남과 영남이 모두 함께 녹아 들어 있다.

 

산방의 외형은 20년 수령의 편백 통나무를 교차시킨 귀틀집이다. 8t 트럭 두 대분의 편백이 소요되었다. 통나무 사이에는 황토와 숯가루, 볏짚을 섞어서 다져 넣었다. 그래야 단단해진다. 벽 두께는 45cm. 청도읍 삼신산 자락의 호골영토산방은 ‘자기를 방생(放生)’하고 싶은 청도의 풍류객들이 모이는 살롱이다.

이 존 것을 나 혼자 누리믄 쓰것소?

별장·미술관 지어 누구나 대접하는 변동해씨 /

“전남 장성에 가면 산속에 참숯과 편백나무와 황토와 죽염까지 써서 손수 별장을 지어 놓고 누구나 와서 쉬라고 열쇠를 100개나 나눠준 사람이 있대.” “뭐 하는 사람인데? 아주 부잔가보네?”

어느 주말, 우연찮게 들려온 소문과 호기심에 이끌려 한번 가보기로 했다. 호남고속도로 백양사 나들목으로 빠져나와 10분 남짓, 〈태백산맥〉과 〈내 마음의 풍금〉을 찍은 ‘금곡 영화마을’ 안내판을 따라 산길을 오르니, 맨 꼭대기에 ‘소담한’ 시골집이 한 채 서 있다. ‘세심원’(洗心園·마음을 씻는 곳)이라 쓰인 나무 팻말 위에 깨진 기와 한 장을 올려놓은 감각이 예사롭지 않다.

“언능 들어옷쇼잉, 먼 길에 여까정 오느라 애썼소.” 어제 본 듯 반겨주는 이가 바로 세심원지기인 청담 변동해(52)씨였다. 반바지에 흰고무신 차림이 영락없이 동네 고샅길에 마을 나온 중년 아저씨다. 현관문을 열자 확 풍겨나는 편백나무향과 반닫이 위에 떠놓은 정한수 한 잔이 절로 마음을 추스르게 한다.

“방명록은 없고, 지금꺼정 받아논 명함만 4천장이 넘드만요.” 1999년 7월 완공해 개방한 이래 꼬박 7년간 어림잡아 1만5천명쯤 다녀갔단다. 오로지 입에서 입으로 퍼진 소문을 따라 온 발길들이다. “첨부터 나는 관리인일 뿐이고, 쉬러 오는 사람들이 주인이란 맴으로 대한께 그런가 한번 연을 맺으면 꼭 다시들 옵디다.” 청담이 짐작하는, 소문난 이유다.

“저짝 황토방을 따땃허니 데펴놨응께 건너갑시다.” 잇대어 지은 별채의 쪽마루에 올라앉으니, 아래서는 낭랑한 계곡물 소리가 올라오고 첨성대를 닮은 굴뚝 위로는 총총한 별빛이 쏟아져 내린다. “이 존 것을 나 혼자만 누리믄 쓰것소?”

이튿날 광주에서 요델협회 회원 가족들 20여명이 와서 노래잔치가 벌어졌다. 그는 이날 직접 농사지어 만든 흑보리쌀 고추장과 죽염된장으로 끓인 무시래깃국, 부인이 담가준 ‘전라도 김치’, 야생 죽로차로 줄잇는 식객들을 정성껏 대접했다.

지난 2월 버려진 마을 구판장을 개조하고 평생 모은 소장품을 내걸어 ‘금곡 숲속미술관’까지 문을 연 청담은 요즘 또다른 꿈을 키우고 있다. 세심원과 미술관에서 음악회나 강연회, 다도와 명상 등 다양한 행사를 마련해 문화의 향기를 더 멀리 퍼뜨리는 것이다.

‘장성 토박이 황주 변씨, 농고 출신, 2005년 장성군청 민원팀장(계장)으로 30년 만에 명예퇴직, 읍내 25평짜리 빌라 거주, 소형 트럭 보유.’ 지극히 평범한 이력의 서민인 그가 이처럼 재벌들도 따라하기 힘든 ‘만인의 별장’에 ‘문화사랑방’까지 꾸릴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그와 인연으로 인근 ‘휴휴산방’에 자리를 잡은 동양학 저술가 조용헌씨는 “사주에 불이 유난히 많고 물은 없어 호를 ‘청담’으로 지어줬다”며 “청렴하게 공덕을 쌓아 유명한 선대의 가풍을 물려받은 것 같다”고 풀이한다. 정작 청담의 답은 간단하다. “돈보다 정성으로, 혼자보다 여러니, 쟁이기보다는 퍼주고 사는 것이 행복허지 않소?”

마음 씻으러 온 객들이 주인 - ‘만인의 별장’ 세심원 이야기 /


‘아니온듯 가시옵소서’, 세심원의 한쪽 서까래 밑에 걸려 있는 목판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마음을 씻고 가는 것이니 흔적을 남길 것도 없다는 뜻일 게다.

그래서 세가지가 없다. 시계, 달력, 텔레비전. 대신 세가지 금기는 있다. 술과 고기, 휴대폰이다. 도시와 일상에서 묵은 마음의 때를 말끔히 씻는 데 방해가 되는 것들이다. 1999년 문을 연 초기엔 멋모르고 마당에서 삼겹살 구워 먹으며 어지럽힌 객들도 없지 않았지만 “집 기운에 눌린 듯” 지금껏 이 원칙은 잘 지켜지고 있다.

누에치던 움막 10여년 손수 개조
숯·편백·황토·죽염의 자연주택
7년간 1만5천여명 발길
사용료 안받고 음식까지 챙겨놔

 

전남 장성군 북일면 문암리, 축령산 자락의 산골에 세심원이 자리잡게 된 내력은 제법 길다. 지난 80년 9급 공무원이던 (청담) 변동해씨는 우연히 구입한 터에 쓰러져 가고 있던 누에치는 잠실을 10여년에 걸쳐 소일 삼아 직접 집으로 개조하기 시작했다. 대대손손 토박이에 생활민원 담당을 해 ‘발이 넓었던’ 그는 96년 무렵 지역의 숯굽는 장인과 함께 주민 소득증대 사업으로 ‘숯공예품’을 개발하고 덜컥 공장까지 인수했다.

하지만 장사와는 인연이 없어, 곧 문을 닫는 바람에 숯만 창고 가득 남았다. 마침 축령산에는 국내 유일의 50년생 편백나무 숲이 울창하게 우거져 간벌 때마다 쓸만한 목재들을 값싸고 손쉽게 구할 수 있었다. 남은 숯 2톤을 바닥에 깔고 그 위 마루를 편백으로 깔았다. 벽은 죽염을 섞은 황토로 발랐다. 독특한 편백향 덕분에 모기나 벌레도 없고, 숯이 습기를 머금어 종종 비워놓아도 늘 실내가 고슬고슬한 말 그대로 ‘웰빙자연주택’이 탄생한 것이다.

방 3칸·부엌 겸 거실·욕실 1칸, 황토방 별채 2칸, 다 지어 놓고 보니, “평생 전원의 삶을 꿈꾸면서도 엄두를 못내는 월급쟁이들과 함께 나눠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뜻맞고 인연 닿는 지인들에게 열쇠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사용료 같은 건 애초 받지 않았고, 쓰레기 처리가 골치 아파 되도록 먹을거리도 가져오지 않도록 했다. 대신 쌀과 김치, 밑반찬을 냉장고에 구비해놓고 알아서 챙겨 먹도록 ‘부탁’했다.

세심원은 지역의 명소를 넘어 씨를 퍼뜨리고 있다. 지난 2월 경북 청도에서 버섯농사를 하는 박복규씨가 ‘길상원’을 열어 교류하고 있는가 하면, 전국 곳곳에서 견학을 오고 있다.

2005년 2월 30년9개월간의 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명예퇴직을 한 그는 세심원지기로 새로운 출퇴근을 하면서 황토방의 군불을 단 하루도 꺼뜨린 적이 없다. 하지만 그런 정성만으로, 그 큰 살림을 꾸릴 수 있을까? 그의 퇴직 이후부터 방문객이 급증하자 월 25㎏씩 쌀을 보내주거나 감사 편지와 함께 봉투를 남겨두고 가는 자발적 후원자들이 하나둘 늘어가고 있기는 하다.

“남매는 다 자라 지 앞가림허니께, 많지 않은 연금이지만 관리비 정도는 충당할 수 있지라우.” 옆에서 말없이 웃어주는 부인의 이해심이 세심원을 지켜온 또다른 힘인 듯했다.

금곡숲속미술관이야기
문화 모르믄 촌사람잉께 기냥 들와서 보시요

“사람들이 미술관 문턱서 겁 먹고 고갯짓만 슬끔 하고 가불더라구요. 기냥 쑥 들와서 보믄 좋을텐디, ‘미술 콤푸렉스’가 엄청나두만요. 그랴서 차근차근 일러주다 보니께 인자는 민중갤러리의 농민 큐레이터라고들 허네요.”

‘문화 보시’를 필생의 업으로 삼은 청담 변동해씨의 열정과 지극 발원(?)으로 문을 연 ‘금곡 숲속미술관’은 세심원과 더불어 장성의 또다른 명소로 뿌리를 내리고 있다. 지난 2월 개관 기념잔치 때는 전국 각지에서 1천명이 넘는 하객들이 몰려와 2.5㎞ 진입로가 막힐 정도였다.


미술관은 겨우 30여평에 불과한 단층 초가한옥, 청담이 즐겨 쓰는 표현대로 ‘소담’하다. 2년 넘게 버려졌던 마을 구판장 건물을 한 달에 걸쳐 개조한 것이다. 세심원을 즐겨 찾는 광주의 한 건설업체 대표가 조명과 전기시설 공사를 하고, 자신은 그림·장식물·진열장 등 전시 컬렉션을 도맡았다. 숯 위에 편백나무 마루를 깔아 세심원 분위기를 그대로 옮겼고 2평짜리 방과 화장실, 개수대도 갖춰 묵을 수도 있다.

 

전시작품은 25점 남짓, 그렇다고 허접한 시골미술관으로 여기면 곤란하다. 대한민국 미술대전 대상 수상 작가인 황순칠씨, 조계종 4대 종정 서옹 큰스님, 한국화 대가 남농 허건, 아산 조방원, 현당 김완영 등 호남 남도 화맥을 이끄는 대가들의 산수화와 선필들이 나란히 걸렸다.

‘걸레스님’ 중광의 해맑은 동심 그림도 시선을 붙든다. 운암 조용민씨의 글은 일본 여행길에 붓이 없어 목욕 수건 네귀를 묶어 쓴 것으로 ‘프로는 연장 탓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주는 걸작이다. 100여년 전 청담의 고조부 때부터 사랑채에서 쓰던 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화로와 고사한 오수목 조각들, 300년 묵은 먹감나무 판으로 만든 다상이 운치를 돋운다. 하지만 청담은 작품들의 값을 모른다. 산 것이 아니라 평생토록 쌓은 교분으로 하나둘 얻은 것들이니 가치를 따질 수조차 없다.

마을 구판장 개조한 초가집에 친분 예인들 작품 걸고 설명까지
‘민중갤러리 농민 큐레이터’ 소문, 문화사랑방 키울 후원회 채비중

입소문을 따라 1주일에 150명 안팎의 관람객들이 꾸준히 찾아오는 데 힘입어 전시 일정도 하나둘 잡히고 있다. 오는 10월 말 황순칠씨의 초대전, 내년 생태미술 기획전, 김문호씨의 천탑전 등을 준비 중이다. 가을부터는 ‘미술관에서의 하룻밤’이라는 이색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미술관 앞마당에 창작공간도 지을 작정이라니 그의 문화 보시행은 끝이 없어 보인다.

“여그 시골 사람들은 손재주든 소리든 다 한가락씩 하는 쟁이고 예술가”여서 일년 열두달 채울 아이디어는 무궁무진하다. 그러나 세심원과 달리 미술관은 그의 열정만으로 꾸려가기에 벅찰 수밖에 없다. 작품에 알맞은 온도와 습도 유지는 물론 보안 시설 관리비 등으로 한달에 최소 150만원은 필요한 상황이다. 그래서 그는 뜻을 같이하는 지인들과 함께 ‘월 1만원 후원회’를 꾸릴 참이다.

“지아무리 잘 묵고 잘 산다 해도, 나라에 ‘문화’가 없으면 난장판이 되지 않겄소.” 비록 산골 구석이지만 문화사랑방지기가 되고자 하는 청담의 안목은 넒고 크다.

 

'내 마음의 풍금' 촬영한 산골 도시인 문화 쉼터로 꾸몄다

 

"툇마루에 잠시 앉아 마을 풍경과 주민들의 삶을 살펴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진 사람들에게 이보다 더 크고 운치있는 미술관이 없죠."

 

19일 전남 장성군 북일면 금곡마을에 '금곡 숲속 미술관'을 연 변동해(52)씨.

축령산(해발 620m) 턱 밑에 20여 가구 50여 명이 사는 금곡마을은 영화 '태백산맥''내 마음의 풍금' 등을 촬영했던 곳이기도 하다. 그는 이웃들의 도움을 받아 방치됐던 30평짜리 한옥을 미술관으로 개조했다.

15평짜리 전시장을 만들어 집에 있던 그림 16점을 내걸고 도자기 5점도 진열했다. 차를 마시며 담소할 수 있는 공간까지 마련했다. 그는 이날 판소리꾼.춤꾼.가수 등과 함께 굿판을 벌여 전국에서 찾아 온 500여 명의 구경꾼을 즐겁게 했다. 직접 담근 동동주에 홍어와 삶은 돼지고기를 안주로 내놓았다. 변씨는 1999년 금곡마을에 사랑방 격인 '세심원'(洗心園.마음을 씻는 곳)'을 만들어 해마다 한두 차례 산골 음악회를 열고 있다.

산 아래가 굽어 보이는 마당 한 켠에 평상을 놓고 당목 천을 쳐 무대를 만든 뒤 평소 알고 지내는 국악인.가수.이야기꾼 등을 세운다. 동동주에 얼큰해진 동네사람을 무대에 올려 한 가락 뽑게도 한다. 추운 날이면 모닥불을 피운다.

행사 때마다 전국 각지에서 수백명이 모여 마당과 토방에 앉고 그 주위에 둘러 서서 흥얼거리고 어깨춤을 함께 춘다. 입장료가 없음은 물론이고 동동주와 안주, 산채 비빕밥까지 공짜로 즐길 수 있다. 예산 마련 방법이 궁금했다. 변씨는 "예술인들은 무료로 출연하고 동네 사람들과 지인들이 물심양면으로 도와준다"고 말했다. 미술 전시회 예약을 세 건이나 받아놓고 있다고도 했다.

7년여 동안 짬이 날 때마다 누에치던 곳을 조금씩 고쳐 세심원으로 만들었다. 거실과 방 내부는 향기가 좋은 편백나무로 마감했고 장작불을 때는 황토방 시설도 갖췄다. 변씨는 장성읍에서 살면서 세심원을 관리할 뿐 자기 집으로 쓰지는 않은다. 열쇠를 마을 입구에 맡겨둬 누구나 쉬었다 갈 수 있는 만인의 별장으로 문을 열어 놓고 있다.

장성군청에서 근무하던 그는 지난해 3월 스스로 퇴직하고 농촌 문화운동에 전념하고 있다.

그는 금곡마을과 세심원으로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이유에 대해 "농산물만 팔지 말고 농부의 정성과 고향의 추억, 정겨운 문화 등으로 도시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사로잡아야 농촌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변씨는 세심원 주변에 차나무를 심어 수제 차를 생산하고, 편백나무 목침과 짚 달걀꾸러미.카펫을 비롯한 아이디어 농.임산물을 개발해 보급하는 일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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