深耕細作/마음을 통하여 세상을

도마 복음-예수와 여성/ 관습의 굴레를 벗고

비오동 2009. 9. 8. 14:57

 

   관습의 굴레를 벗고

 

 

 

    역사 시대에 들어 여성은 대체로 남성에 비해 열등한 대우를 받아왔다. 그러한 일은 역사의 어디서나 발견되는 일이며, 지금도 그렇다. 그나마 지금은 여성들이 그 어느 때보다 인간다운 대우를 받고 살아가는 시대가 아닐까.

 

    여성이 인간다운 대우를 받고 살아가게 된 데는, 여러 가지 역사적 사실들이 고찰되어야 하겠지만, 그 누구보다 예수의 덕이 크다. 예수는 아이를 통해 어른을 깨우쳤듯이, 또한 여성을 통해 남성을 깨우치려 했다. 간음한 여인을 정죄하는 장면에서 "너희 중 누구든지 죄 없는 이가 돌로 치라."라고 함으로써 윤리의 보편성을 일깨웠다. 또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 이방의 여성도 예배자가 될 수 있다고 가르쳤으며, 제자들 앞에서 마리아가 자신의 발에 값비싼 향유를 붓는 신앙 고백을 허용하여 참된 신앙의 자세를 가르쳤다. 그리하여 예수께는 많은 여성들이 후원자이자 제자로서 따랐으며, 예수의 십자가 수난과 부활의 기적을 지킨 것도 이들이었다. 이로 보아 여성을 보는 관점에서 예수는 기존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관점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예수의 여성관이 시험대에 오른 일이 있었다. 문제를 제기한 사람은 뜻밖에도 제자인 신몬 베드로였다. 그는 스승 예수를 따르는 여자, 마리아를 떠나보내자고 동료들에게 제안한다. 다소 충격적인 장면이다. 이 일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은 4대 복음서가 아니라 외경이라 일컬어지는 도마복음에, 그것도 맨 끝 장에 실려 있기 때문이다.      

 

    시몬 베드로가 그들에게 말하길, "마리아가 우리에게서 떠나도록 합시다. 여자들은 생명을 얻을 가치가 없기 때문이지요." 예수께서 말씀하시길, "내가 그녀를 남자로 만들기 위하여 그녀를 인도할 것이니라. 이것은 그녀가 남자를 닮은 살아있는 영이 되도록 함이니라. 자신을 남자로 만든 모든 여자들은 하늘나라에 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니라."

114. Simon Peter said to them, "Let Mary leave us, for women are not worthy of life." Jesus said, "I myself shall lead her in order to make her male, so that she too may become a living spirit resembling you males. For every woman who will make herself male will enter the kingdom of heaven."

                                    - 도마복음(The Gospel of Thomas), 토마스 램딘 (Thomas O. Lambdin) 영어 본

                                    - “다빈치코드가 알지 못한 예수의 비밀” (중명출판, 김태항)에서 발췌

 

    시몬 베드로는 세례 요한의 제자였다가 예수를 따르게 된 인물이다. 세례 요한의 영향으로 금욕적이며 남성적 의지가 강한 수도자였다. 그는 여러 제자의 머리였을 뿐 아니라, 예수를 잡으러 온 종들을 맞아 그들의 귀를 칼로 내리쳤던 인물이다. 그리고 후일 기독교를 정립하고 전파하는 일에 으뜸가는 계통을 수립하여 오늘날 기독교의 원류를 이룬 인물이다. 그러한 베드로의 면모가 이 장면에서도 흠씬 풍겨져 나온다.

    "마리아가 우리에게서 떠나도록 합시다. 여자들은 생명을 얻을 가치가 없기 때문이지요."

    이 말은 다소 느낌이 거칠다. 결론이 앞세워져 있고 논거가 그 뒤를 받치는 형식으로 되어 있기 때문일까. 스승인 예수에 대하여 "스승이시여, 여자들도 생명을 얻을 가치가 있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마리아가 우리에게서 떠나도록 해야 하지 않습니까?" 라고 물었다면 그 말이 공손하다 할 수 있다. 그런데 베드로는 사실 스승에게 말한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제안하였다. <그들>은 누구인가? 예수의 제자들일 것이다. 베드로는 그 자리에 함께한 예수도 자신의 전제-여자들은 생명을 얻을 가치가 없다는 것,을 부정하지 못하리라고 보아 단언하는 것일 터이다. 어찌보면 매우 불공한 행위이다. 그러나 예수의 생각은 달랐다. 그리하여 뜻밖의 대답이 나왔다. "(마리아를 떠나도록 하지 않겠다. 여자라면 생명을 얻을 수 없다. 마리아도 그러하다. 그러므로) 내가 그녀를 남자로 만들기 위하여 그녀를 인도할 것이니라."라고 (말머리를 감춘 채) 답하였던 것이다. 예수의 고뇌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문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베드로의 인식이다. 베드로는 마리아를 단지 한 여자로 보는 데 머물러 있기에, 그녀를 자신의 길에 걸림돌로만 여기게 된다. 즉 베드로는 마리아가 자신들이 생명을 얻는 데 방해가 될 뿐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그리하여 베드로가 예수조차 자신처럼 마리아를 단지 여자로 보고 있다고 단정하고 나서는 것, 바로 그것이 문제인 것이다. 세속 남자들에게 여자란 그런 존재일 수밖에 없다. 마리아가 예수를 사랑하였다면, 베드로의 눈에는 질투어린 감정을 일게 하였을런지도 모른다. 그것은 예수의 문제가 아니라 베드로의 문제다, 그런 측면에서 베드로는 자신으로 하여금 남자로서 질투를 일깨우는 마리아가 종교적 생명을 이루는 데 방해가 된다고 여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할 일이다. 

    여기서, 베드로가 자신에 비추어 예수를 이해하고 있다는 것, 이것이 거듭 강조해야 할 핵심이다. 자신이 그러한 것처럼 마리아는 예수에게도 여자일 뿐이다, 여자인 마리아가 예수의 무리와 함께 한다는 것은 우리가 생명을 이루는 일에 방해가 되는 것일 뿐이다, 라는 베드로의 생각은 굳어져만 간다. 그래서 베드로는 고심 끝에 감히 스승이 있는 가운데서도 무리에게 거친 목소리로 선동하여 말하는 것이다. "마리아가 우리에게서 떠나도록 합시다. 여자들은 (그저 여자일 뿐,) 생명을 얻을 가치가 없습니다.(이를 잘 아시지 않습니까?)"

 

    이 시대의 베드로인 우리를 위해서라도 이 이야기는 이쯤에서 거두고, 예수의 말씀으로 돌아가자.

 

"내가 그녀를 남자로 만들기 위하여 그녀를 인도할 것이니라. 이것은 그녀가 남자를 닮은 살아있는 영이 되도록 함이니라. 자신을 남자로 만든 모든 여자들은 하늘나라에 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니라."

 

    예수의 이 답변을 간명하게 정리하면 이러하다. <내가 마리아를 인도하여 그녀를 남자를 닮은 살아있는 영이 되도록 할 것인데, 이와 같이 나의 인도를 따라 자신을 남자로 만든 모든 여자들은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라는 것이다.

 

    '남자를 닮은 살아있는 영'이 되도록 한다는 것이 대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우리는 그 답을 거꾸로 베드로의 생각에 비추어 얻을 수 있다. 여자를 여성으로만 여기는 베드로로서는 여자가 남자를 닮은 살아있는 영이 된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 여자란 남자에 비하여 열등하고 비천한 존재일 뿐이다. 베드로는 그러한 생각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다. 그것은 여자의 굴레이자, 다른 한편으로는 베드로와 같은 남자의 굴레이기도 하다. 실은 많은 여자들, 마리아조차도 그러한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였을 것이다. 예수를 바라보며 사랑하는 마음이 '남자를 닮은 살아있는 영'이 아니라 그저 여자의 마음이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자인 마리아로서는 아무래도 그 굴레를 벗어날 수가 없을 것이다. 여자와 남자는 서로 상대하면서 서로에게 그러한 굴레를 덮씌운다. 그리하여 세월이 지나면 여자는 여자, 남자는 남자, 베드로는 베드로, 마리아는 마리아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세속 여자와 남자의 삶이다.

 

    바로 그러하기에 예수의 인도가 필요하다. 예수가 아니면 마리아를 남자로 만들 수가 없다. <예수의 인도함>은 무엇을 뜻할까. 성경의 모든 구절을 뒤져봐도 신통한 답을 찾을 수가 없다. 다만 근사한 예가 있다면 갈릴리로 가는 길에 사마리아의 여인과 나눈 대화이다.

 

마침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으러 왔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 하고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제자들은 먹을 것을 사러 고을에 가 있었다.

사마리아 여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선생님은 어떻게 유다 사람이시면서

사마리아 여자인 저에게 마실 물을 청하십니까?"

사실 유다인들은 사마리아인들과 상종하지 않았다.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대답하셨다.

"네가 하느님의 선물을 알고 또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

하고 너에게 말하는 이가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오히려 네가 그에게 청하고

그는 너에게 생수를 주었을 것이다."

그러자 그 여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선생님, 두레박도 가지고 계시지 않고

우물도 깊은데, 어디에서 그 생수를 마련하시렵니까?

선생님이 저희 조상 야곱보다

더 훌륭한 분이시라는 말씀입니까?

그분께서 저희에게 이 우물을 주셨습니다.

그분은 물론 그분의 자녀들과 가축들도

이 우물물을 마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이 물을 마시는 자는 누구나 다시 목마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

그러자 그 여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선생님, 그 물을 저에게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목마르지도 않고,

또 물을 길으러 이리 나오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이리 함께 오너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 여자가 "저는 남편이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 '저는 남편이 없습니다.' 한 것은 맞는 말이다.

너는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지만

지금 함께 사는 남자도 남편이 아니니,

너는 바른 대로 말하였다."

여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선생님, 이제 보니 선생님은 예언자시군요.

저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선생님네는 예배를 드려야 하는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아, 내 말을 믿어라.

너희가 이 산도 아니고 예루살렘도 아닌 곳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너희는 알지도 못하는 분께 예배를 드리지만,

우리는 우리가 아는 분께 예배를 드린다.

구원은 유다인들에게서 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실한 예배자들이

영과 진리 안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사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이들을 찾으신다.

하느님은 영이시다.

그러므로 그분께 예배를 드리는 이는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

그 여자가 예수님께,

"저는 그리스도라고도 하는 메시아께서

오신다는 것을 압니다.

그분께서 오시면 우리에게 모든 것을 알려 주시겠지요." 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너와 말하고 있는 내가 바로 그 사람이다."

바로 그때에 제자들이 돌아와

예수님께서 여자와 이야기하시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러나 아무도 "무엇을 찾고 계십니까?",

또는 "저 여자와 무슨 이야기를 하십니까?" 하고 묻지 않았다.

그 여자는 물동이를 버려두고

고을로 가서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제가 한 일을 모두 알아맞힌 사람이 있습니다.

와서 보십시오.

그분이 그리스도가 아니실까요?"

                        -<요한복음>, 4장 7절~29절

 

    무릇 세속 사람의 생각은 관습적이다. 사마리아 여인도 물론 그러했다. "유다 사람이면 사마리아 사람과 대화를 나누지 않으며, 또한 길가는 남자가 낯선 여자에게 말을 거는 것은 적절한 행동이 아니다. 더욱이 유다 사람 랍비가 이방의 천한 여자에게 말을 거는 것이니 더욱 이상하다." 그래서 여인은 예수의 말 건넴에 놀라워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예수의 제자들도 예수가 여자와 이야기하는 이 광경을 보고 놀랐다. 그들이 예수가 여자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에 대해 묻지도 않은 까닭은, 단지 관습적 사고를 따라서 내심 예수의 행동을 부적절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다만 스승의 부적절한 행동을 모른 척 덮어두려 했다. 그들의 도량으로 할 수 있었던 일은 그것뿐이었다.

    그러나 예수는 사마리아 여인과 매우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것은 오히려 관습적 사고에 젖은 제자들과는 나누어 볼 수 없는 내용이었다. 예수는 이 대화를 통해, 유다와 사마리아의 구별을 넘은 새로운 진정한 신앙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를 그리스도라 여기어 예수의 말씀에 감응한 것은 이 여인의 복이었다.

 

"여인아, 내 말을 믿어라.

너희가 이 산도 아니고 예루살렘도 아닌 곳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너희는 알지도 못하는 분께 예배를 드리지만,

우리는 우리가 아는 분께 예배를 드린다.

구원은 유다인들에게서 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실한 예배자들이

영과 진리 안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사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이들을 찾으신다.

하느님은 영이시다.

그러므로 그분께 예배를 드리는 이는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

 

    예수의 이 말씀은 2천년을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현재형이다. 세속 사람들은 여전히 구별하고 차별한다. 유다와 사마리아, 예루살렘과 그리심산, 기독교와 이교도, 남자와 여자, 백인과 유색인, 가진자와 못가진자, 배운자와 못배운자...... 그러나 진정 중요한 것은 차별이 아니라, <진실한 예배-영과 진리 안에서 드리는 예배>임을 예수는 선언한다.

    예수가 사마리아 여인에게 다가가 그녀를 인도하기 이전에, 그녀는 단지 한 여자일 뿐이었다. 사랑에 목마른 여자 -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지만, 지금 함께 사는 남자도 남편이 아니라고 여기는 여자, 그러니 남자는 있더라도 진정한 남편이 없는 여자였다. 예수는 그러한 그녀를 인정했다. 예수를 따라 그녀도 예수를 인정했다. "선생님, 이제 보니 선생님은 예언자시군요."

    이것이 예수의 인도함이다. 사마리아 여인은 이제 단지 세속 사랑에 목마른 여자가 아니라, 영에 목마른 여자, 영원한 생명을 꿈꾸는 여자가 되었다. 이제 더는 그 여자는 세속 남자라는 굴레가 필요치 않게 되었다. 

 

"이 물을 마시는 자는 누구나 다시 목마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

그러자 그 여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선생님, 그 물을 저에게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목마르지도 않고,

또 물을 길으러 이리 나오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다시 마리아에게로 돌아가자.

    예수는 마리아를 사마리아 여인에게 하였던 것과 같이 영원한 샘물의 비유로서 그녀를 영의 예배자로 인도하였을 것이다.

    "내가 그녀를 남자로 만들기 위하여 그녀를 인도할 것이니라. 이것은 그녀가 남자를 닮은 살아있는 영이 되도록 함이니라. 자신을 남자로 만든 모든 여자들은 하늘나라에 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니라."

    남자를 닮은 살아있는 영이 된다는 것은 남자와 여자의 구별을 넘어선다는 것이며, 하늘나라의 영원한 사랑, 영원한 생명을 찾는다는 것이다. 마리아는 남자를 닮은 살아있는 영이 되었을 것이다. 흔히 예수와 마리아를 세속의 연인 사이였다 말하는 이가 있다. 과연 그럴까? 그렇지 않을까? 그들은 세속의 연인이었기보다 <진정한 영의 예배자>로서 더 아름다운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이로써, 또한 예수는 베드로에게 답하였다. 그 답을 새겨 보자.

    "베드로야, 관습의 굴레를 벗고 진정한 영의 예배자로 거듭나라. 그런 자만이 하늘나라의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될 것이다."

 

 

2009.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