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정진/경전을 찾아서

우리는 기독교에 대해 너무 모른다

비오동 2009. 12. 30. 10:45

 

 

우리는 기독교에 대해 너무 모른다

 

미셀 옹프레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결정하는 많은 요인들이 무의식 세계에서 확산되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종교의 세뇌 방식에 대한 우리의 몰이해가 충분히 이해된다. 명철한 의식을 가진 주체들과 종교 이데올로기 간의 간섭 및 충돌은 언어의 측면에서 뚜렷이 나타나지 않는다. 달리 말하면 공개적인 형태로 드러나지 않는다. 신정정치, 즉 세 경전(토라, 바이블, 꾸르안) 중 하나를 지배원리로 내세운 정치체계의 경우를 제외한다면, 세속인들이 이어간 유대교와 기독교의 계보에서 성직자나 성직에 관련된 개인의 이름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이런 과정에서 성직자의 이름이 눈에 띠지 않는 것은 종교 이데올로기를 무의식의 세계에 확산시키려는 의도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니다. 그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이는 세상 사람들이 유대교와 기독교에 대해 잘 모른다는 점을 노린 것이기도 하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만이 아니라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사람도 기독교에 대해 정확히 모른다. 종교기관과 그 하수인들이 가르쳐준 이데올로기가 그들이 아는 전부다. 예배 시간은 성찰과 분석이 이루어지고 학습하고 지식을 확산시키고 교환하는 시간이 아니다. 교리 문답서도 기독교 이데올로기의 주입을 목표로 한다. 기독교만이 아니라 다른 일신교의 예배의식과 문화도 다르지 않다.

   기독교인이 통곡의 벽에서 기도하고, 무슬림이 하루에 다섯 번씩 기도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신이 가르쳐준 기도문을 기계적으로 암송한다. 그런 기독교인들에게 보쉬에 주교의 설교는 지루하고 단조로운 설교를 벗어난 청량제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베로에스Averrhoes(1126~1198, 본명은 이븐 루슈드Ibn Rushd로 이슬람 전통과 그리스 사상을 통합한 이슬람교의 종교 철학자)와 아비센나Avicenna(980~1037, 본명은 이븐 시나Ibn Sina로 의사이자 아리스토텔레스 주석가)를 떠받드는 무슬림에게는 기억력은 좋아도 지적이지 못한 이맘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런 성직자 없이도 각 공동체마다 종교 연구회들 사이에 모순된 정보가 서로 충돌하고 논쟁적인 토론이 끝나지 않는다. 하지만 결국에는 잘 관리된 '기계'의 도움을 받아 허황된 이야기를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사람이 승리하곤 한다. 또, 그 '기계'는 늘 제자리에서 맴돈다. 도무지 변하지를 않는 것이다. 기억력에만 의존할 뿐 지적 능력은 무시한다. 성경 구절을 암기해서 뇌까리는 것은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기도도 마찬가지다. 그런 기도는 생각과 거리가 멀다.

   바울의 편지를 여러 차례 읽었다는 사람은 많지만 나지안즈의 성 그레고리오Gregoire de Nazianze에 대해서는 금시초문이다.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장식은 해마다 다시 만들면서도 왜 아리우스주의가 이단이라고 비난받았는지, 왜 성화논쟁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무교병(누룩을 사용하지 않은 빵)으로 예수와 하나가 되지만 교황의 무류성을 인정하는 교리가 있다는 것은 모른다. 크리스마스 예배에 참석은 하면서도 '무적의 태양신Sol Invictus'(로마인들은 12월 25일을 동지라면서 태양을 섬기는 날로 삼았다-편집자)을 섬기던 이교도의 축일을 교황청이 바꿔놓은 것이 크리스마스의 기원이라는 사실은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세례식과 결혼식, 장례식에 참석하면서도 외경(外經)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도 없다. 고난의 십자가 아래에서 엎드려 기도하지만 당시의 지배자들이 예수의 재판에 신중한 입장을 취하며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려 하지 않자 사람들이 돌로 때려 죽였다는 새로운 정보에는 귀를 닫아버린다. 그밖에 예배 자체를 우상화하면서 생겨나는 문화적 현상들도 종교의 올바른 이해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옛 사람들은 창세기를 읽으면서 지식을 얻으려 하지 않았다. 그저 믿고 순종하는 데 만족했다. 지식보다는 믿음을 강조했고, 과학적 분석을 경계했으며, 순종하는 마음을 칭찬했다. 하기야 무조건 순종해야 골치 아픈 논쟁을 사전에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에밀 리트레Maximilien-Paul-Emile Littre(1801~1881)는 무슬림의 어원이 하느님과 무함마드를 향한 순종이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어쨌든 일상적인 삶에서 토라의 꼼꼼하고 치밀한 규칙을 한 치라도 벗어나 생각하거나 행동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순종보다 이성적 판단을 앞세울 분위기가 전혀 아니었다. 이런 일로 봤을 때, 하나의 종교를 확실하게 뿌리내리고 확산시키기 위해서는 사람들을 무지와 야만의 상태에 가둬놓는 것이 최고의 방법인 듯하다.

 

   한편 종교적이면서 역사적인 문화는 막강한 무기로 변했다. 예수회가 대표적인 예다. 현란한 미사여구가 수 세기를 장식했고, 신학적 궤변이 거의 1천 년을 지배했으며, 스콜라 학자들의 풍자적인 글들이 도서관을 채우면서 지식이 무기로 사용되었다. 그렇다고 진지하고 성실한 논쟁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기독교 변증론이 압도적으로 우세했다. 달리 말하면 테르툴리아누스Quintus Septimius Florens Tertullianus(160~220, 초기 기독교의 주요 신학자, 논쟁가, 도덕주의자)가 기독교를 옹호하는 데 적극적으로 사용한 논쟁술을 되살리는 일에 역점을 두었다. 따라서 역사 전체가 논쟁자의 이데올로기적 전제에 종속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점에서도 '예수회'라는 이름은 딱 들어맞았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개종한 이후에 교회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권력자의 편에 섰다고 지적한다면 기독교인들은 뭐라고 대답할까? 아마도 '해방신학'을 들먹일 것이다. 그러나 교회의  수장이자 인도자인 요한 바오로 2세가 해방신학을 비난한 사실에 대해서는 뭐라고 변명할까? 또 바울의 기독, 즉 기독교의 주류가 육신과 살, 쾌락을 비하하며 여성을 경멸한다는 증거를 제시한다면 기독교인은 뭐라고 대답할까? 아마도 '신비주의적 환희'가 있다고 반박할 것이다. 반면에, 그런 환희의 표현을 사용하여 살아 있는 동안에는 색정광이라 비난받았지만 훗날 시성(諡聖죽은 후에 성인품(聖人品)으로 올리는 일)과 시복(諡福 죽은 뒤 복자품(福者品)에 올리는 일) 등의 칭송을 받으며 명예가 회복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입을 다문다. 아메리카를 식민지화하려고 종교, 특히 가톨릭의 이름으로 아메리카 인디언들을 학살하고 그들의 영환과 인권을 부인했던 사실을 거론하면 기독교인은 뭐라고 대답할까? 아마도 껄껄 웃으며 '젊은 목사로 쿠바 정복에 가담한 바르톨로메 데 라스카사스Bartolome de Las Casas'에 대해 언급할 것이다. 그러나 그가 이론적으로는 인디언들을 옹호했지만 실상은 과테말라인들의 책을 불살랐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그런 사실을 그가 죽은 뒤에야 알았다면서 쉬쉬하고, 그가 흑인과 인디언이 서로 다를 바 없다고 유언했다는 사실도 묻어버리려 애쓸 것이다.

   꾸르안의 율법을 해석하는 주석과, 아야톨라, 물라 등도 예외가 아니다. 그들도 이른바 성전(聖典)의 모순된 내용들에 의미를 붙이고 일관성 있는 해석을 하기 위해 온갖 머리를 짜낸다. 수천에 이르는 하디스 구절들과 곡예를 벌이고, 심지어 이미 폐기되거나 폐기되어 가는 구절로 마무리 짓는다! 유대인뿐 아니랄 꾸르안을 곧잘 인용하는 비무슬림마저도 증오하는 이유에 대해 물으면 그들은 뭐라고 대답할까? 아마도 '딤마Dhimma' 제도를 언급하면서 비무슬림도 보호받을 권리가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딤맘 제도가 '지즈야Jizyah', 즉 세금을 충실히 납부한 후에야 보장된다는 사실까지 구태여 밝히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런 식의 관용이라면 보호해준다는 명목으로 장사꾼들을 공갈 협박해서 돈을 뜯어내는 조직폭력배와 다를 게 뭐가 있겠는가!

   이렇게 망각하고 왜곡하고 합리적 분석보다 순종을 미덕으로 삼으면서, 종교는 알맹이가 어디론가 없어지고 껍데기만 남아, 어떤 형이상학적 이론이나 사회학적 이론과도 타협하는 모호한 태도를 취한다. 예컨대 마르크스주의자를 자처하면서도 계급투쟁을 부인하고, 따라서 프롤레타리아독재를 포기하는 식이다. 이런 식으로 유대인, 기독교인, 무슬림은 각자의 형편에 맞춰 도덕관을 만들어낸다. 달리 말하면, 경전의 내용 중 편의에 따라 뺄 것은 빼고 지킬 것은 지키면서, 그들의 종교 전체가 추구하는 본연의 의미는 무시한 채 공동체의 소속감만을 더해주는 게임의 규칙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종교의식은 눈에 띄게 사라졌지만 지배 에피스테메는 더욱 강화되는 이중적 양상을 띤다.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기독교적 무신론 정도라고 할까?

 

 

 

출전; [무신학의 탄생-철학, 종교와 충돌하다]에서

미셀 옹프레 지음, 강주헌 옮김, 모티브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