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집짓기, 힘들지만 재밌어
2005년 8월의 마지막날,
오랜 기다림과 망설임 끝에
툇마루가 딸린 작은 황토방 짓기로 했다.
통나무와 황토를 얼기설기 섞어 담을 쌓는 방식과,
전통적인 통나무 기둥세우기 방식의 병합이다.
이웃 산에서 베어낸 통나무들이 등치가 너무 커서 작업하기에는 적당치 않은 면도 있으나 그런대로 통나무가 풍겨내는 든든한 맛이 있다. 손질이 많이 가긴 하지만, 잣나무, 소나무등으로 안 벽을 장식하면 은은한 향내가 풍겨날테고...
언제 어떤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설지 아무런 그림도 없다. 남편과 나, 그리고 때로 친구 한 두 사람. 앞서 이렇게 저렇게 지휘하는 남편의 머릿 속에도 뚜렷한 설계도는 없단다. 돌을 만지다, 나무를 만지다, 흙을 만지다가 그 돌과 흙과 나무가 원하는 곳으로 움직여 놓을 뿐인 것 같다.
너무도 생소한 돌, 흙, 나무 만지기라 조심스럽다. 통나무에서 벗겨지는 껍질, 그리고 내미는 속살과 그 내음, 곳곳에 둥지를 튼 옹이 또한 기둥의 아름다움을 더해 주리라.
아들 한모가 군대 입영을 앞두고 열심히 무거운 통나무를 날랐다. 아빠와 함께 나무 기둥을 세우고, 대들보까지 놓고는 아쉬운 마음으로 입대를 했다. 한모가 첫 휴가 나올 때에는 저글저글 끓는 구들장에서 몸을 풀 수 있게 해 주어야지.
황토 흙을 퍼내어 물에 개어 반죽을 하다보면 점점 더 찰져 가는 그 느낌, 손바닥에 전달되어
오는 흙의 변화가 놀랍다. 책에서 보니, 흙일하기가 너무 힘드니 포크레인을 불러 필요한 양의 흙반죽을 부탁하라고 조언하고 있다. 누군가 그냥 손으로 하면 안되냐고 질문을 던지자 TV에 나올 일이라고 했는데, 그런데 우리가 바로 연약한(?) 두 손으로 비비고 비비고, 주무르고 주무르고 하여 집을 지으면서 손가락의 지문이 다 없어질 지경이라고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그래도 흙과 노는 일. 어릴 때 찰흙으로 가지고 싶은 모든 것을 만들 때와 같이 마냥 즐겁기만 했다.
책방에서 책도, 인터넷으로 황토집짓기, 토담집짓기 등 다양한 자료들을 모았다. 얼마나 고마운 자료들인지 모른다. 인터넷에 자료들을 올려 놓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읽고 또 읽고 해서... 입이 아프도록 ‘책에서 이렇게 하라던데...’하지만, 돌아보면 남편은 다른 방식으로 하고 있다. 나중엔 남편이 ‘이것은 어떻게 하지?’하고 물으면, 난 퉁명하게 ‘자기 좋은대로 해’라고 한다. 남편은 나의 그런 식 대답을 가장 무서워(?)한다. 이 집짓는 일로 사이가 너무 벌어지면 안 좋으니까, 위험 수위에 왔다는 신호탄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실질적인 경험이 없는 나는 하는 수 없이 책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그것에 대한 의존성이 강했다. 남편은 예전 시골에 살면서 보았던 것들과, 아주 작은 것이지만 손수 흙집을 한 번 지어봤던 경험 등을 살려 이렇게 저렇게 꾸려나갔다.
설계도 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을 따라, 소위 ‘시다’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모두들 다 앞장서라면 마다할 사람 하나 없는 사회에서 말이다.
“긴장과 이완”
우리들 속에서 알게 모르게 내색하지는 않는 가운데서도 느낌과 감정의 ‘긴장과 이완’이 수도 없이 반복되곤 했다. 빈틈없이, 자로 잰 것 같은 집을 짓자는 게 아닌 터에 이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떠할꼬만, 그러나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 담고 있는 기대치들이 있어, 설왕설래 감정의 부딪힘들이 오고 갔다. 그러는 사이, 마음을 비울 줄 아는 편안함도 자리를 잡는다. 조금 삐닥한 모양이 더 예뻐보이기까지 한다.
주변 잣나무 숲에서 잘려져 나간 통나무들이 너무 애처로와서...
주변의 질 좋은 황토 흙이 아까와서,
그리고 주변의 크고 작은 돌들을 이용해서, 바로 이 땅에서 난 것들로 이 땅에 어울리는 작은 오두막을 하나 지어보자는 생각 외에는 사실 다른 아무 준비도 없었다. 얼마만큼의 돈과, 시간과 노력이 드는지도 몰랐다. 그냥 아주 작게, 2.평 반, 전통 온돌을 놓아 겨울에 구들장에 몸을 지질 수 있으리라는 기대만 있었다.
더운 여름 날, 할 수 있는 일의 양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리고 또 전문가들이 아니라, 통나무 하나를 놓은 다음엔 그 다음 나무를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놓아야 할지를 고심하고 또 고심해야 했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밤송이들이 알알이 영글어가는 것을 보면서....
기초 흙벽이 쳐지고, 기둥과 대들보, 서까래, 대나무 지붕이 쳐지면서 흙집의 윤곽이 드러났다. 뒷쪽으론 벽장이 덧 쳐지고 아궁이 쪽으론 꿀단지를 숨겨놓을 다락도 내달았다.
이제 흙집 짓기에 참여한 사람들이 불을 피우고 둘러앉아 몸의 노동 후에 오는 노곤함과 흐뭇함에 젖어, ‘마음의 뜨락’에 자리 잡은 이 오두막을 ‘뜨락의 기쁨’으로 이름 지었다. 뜨락에서 마음을 나누는 우리들에게 기쁨을 선사하는 집인 셈이다.
하지만 이 뜨락의 기쁨이 얼마만한 기쁨을 우리에게 줄 것인지 불안하기도 했다. 지어진 집보다는 손으로 지어가는 과정에서 과연 기쁨을 줄 것인지? ‘두 번은 못 해’ ‘알고는 못 해’힘든 고비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사실 노동 자체보다도 ‘머리, 생각의 충돌’이다. 이번 집을 지으면서 나는 ‘느리게 산다는 것’을 여러 번 곰씹어 보게 되었다. 더위와 싸우면서, 땀으로 범벅이 된 몸, 각자 자기가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하고 싶은 일, 각자가 가진 생각과 노동의 한계....
‘이렇게 하자’는 제안은 아주 조심스러워야 한다. 상대방의 상황이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인지, 움직이고 싶은 상황에 있는 것인지를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의 가속도가 붙기 전까지는, 일을 하자 말자는 말도 안한다. 그저 내가 내 손으로 조금씩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다른 사람도 일하고 싶은 생각이 자연스레 일어나면 좋다는 생각일 뿐이다. 오늘은 여기까지, 내일은 저기까지 No!!
옛 한옥을 부수고 나온 전통 구들을 어렵게 구해왔다. 구들을 놓아보자는 것이다. 구들 전문가인 할아버지를 모셔볼까도 생각했지만 그도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인터넷을 통해 자료를 수집하고 읽고 또 읽었다. 알 수 없는 구조물, 그리고 그 알 수 없는 이름들에 낙담이 되기도 했다. 구들장 속을 한 번도 들여다 본 적이 없이 이론만 가지고 될 것인가?
그런데 어느 날 구들을 놓을 시기가 임박하고야 말았다. 그동안 공부했으니 구들은 나보고 알아서 하란다. 난 사실 옆에서 도움이 될 수 있으려니 하는 생각에서 공부했던 것인데 큰일이다. 전통구들 놓고 연기가 잘 빠지게 하는 것이 쉽지 않아 더러는 휀을 달기도 하는 모양이다. 아궁이와 굴뚝의 위치, 고래의 모양 등에 따라 탈이 나기가 쉽단다. 인터넷 자료가 큰 도움이 되긴 했다. 어렵사리 구들의 평면도와 측면도도 구했다.
아랫목과 윗목의 경사를 만들고, 아궁이에서 나간 불의 열기가 바로 고래를 통해 연통으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개자리(구들 개자리, 고래개자리, 그리고 굴뚝개자리 등 깊은 구덩이)를 만들어 뜨거운 열기가 그곳에서 머물다가게 하는 지혜를 배웠고, 고래를 4군데로 갈라 만들면서도, 굴뚝에서 가까운 한쪽 고래를 타고 열기가 굴뚝으로 빨리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고래 끝에 두둑을 만들어 주기도 하여 방의 곳곳이 따뜻하게 했다. 베르누이의 역학이 도입된 전통구들의 과학성을 이구동성으로 찬탄해 마지않았다. 약 3 년에 한번 정도 고래에 쌓인 재를 훌터 내야 할 경우까지를 감안해야 했다.
구들장을 놓고, 마름으로 잔돌을 놓고, 흙으로 마감하고, 그 위에 갠 흙을 부어 바르고 다시금 빻은 숯가루를 두 포대나 깔았다. 건강에 좋다나보다. 다시 고운 흙을 부어 수평을 맞추고 발 로 꼭꼭 밟아 주었다. 바닥이 다 마르기까지는 방바닥 마감을 할 수 없다. 내년 봄 쯤엔 아마 방바닥에 광목이나 삼베 같은 것을 깔고 콩댐을 하면 좋을 것 같다고 하는데 잘 모르겠다.
남편 친구가 아궁이를 전담하여 우리 눈에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그 쓰임새 또한 여간 기쁨을 주는 것이 아니다. 솥을 거는 아궁이대신, 아궁이에선 장작을 넣고 불을 지피고 피어오르는 불의 춤을 만끽하고, 윗칸에 구들장을 하나 더 대어 만든 오븐에서는 자기로 만든 차 주전자가 덥혀지고, 고구마, 달걀, 은행이 구워진다. 부뚜막도 다듬어내고 겨울을 나기위한 부엌 바람막이도 멋있게 갖추었다. 말린 깻대로 장식도 하여 냄새까지 구수하다. 아무튼 구들장이 아랫목 윗목 따로 없이 골고루 따끈따끈, 100점 짜리 구들이 되었다. 첫 작품이 실수로 잘 된 것인지, 정말 구들 전문가로 나서도 되는 것인지? 하하.
뜨락 전경을 내다볼 수 있도록 한 큰 유리창과, 드나드는 전통 한지 문을 달고 나니 흙집 완성 전에 온돌을 즐기기에 대충 갖추어진 셈이다. 그러고 나니 찬 바람이 분다. 아직 채 마르지 않은 흙벽에선 냉기가 새어 나온다. 바닥은 뜨근뜨근, 마르지 않은 바닥 흙에서 김까지 모락모락. 잊지 못할 광경이다.
그동안 이렇게 저렇게 모아 놓았던 천들과, 테이블 보 등을 뒤적여 보다가, 흙집 빛깔에 맞을 몇 가지 천을 가지고 커텐을 만들어 보았다. 완성된 것은 아니지만, 큰 유리창의 찬기를 막아주고, 밤중에 아늑함을 더해 줄 임시 막이인 셈이다. 돈을 들이지 않고 있는 재료를 가지고, 친정 엄마가 그 옛날 시집올 때 가지고 온 ‘싱거’ 미싱을 가지고 아주 기초적인 바느질을 해 본 것이다. 이것이 ‘아름다움’이고 이것이 ‘기쁨’이다.
아직도 할 일이 많이 남아있다.하지만 그래도 서두름이 없이 느리게 하자는 주의다. 천장의 흙도 발라야 하고, 안벽의 흙이 옷에 묻어나지 않게 마감 흙도배도 해야 한다.바깥벽의 덧칠은, 두께도 생각하고 마르는 것도 감안하여 내년 봄에나 손대야 할 것 같다.
아들 한모가 첫 휴가를 나왔다.
80일 휴가란다. 기가 막힌 나들이다. 그동안 편지를 통해 잘 지낸다고는 했지만, 표현이 그렇지 얼마나 갑갑하고 견디기 힘든 ‘갇힘’이었겠는가?
9월 초, 크고 무거운 통나무들을 옮기고 기둥을 세우고 대들보까지 올리고 간 한모가, 그동안 엄마 아빠가 손으로 지어놓은 황토방을 보러왔다.
뜨끈뜨끈한 구들장에서 그동안 많이 그리워했던 엄마, 아빠와의 정감있는 하룻밤을 보내고 아주 만족스러워했다.
첫 눈이 내렸다. 솜방망이 같은 소담스런 함박눈이 황토방 위로 햐얗게 쌓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