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시대의 팔레스티나
복음서들을 제대로 알아듣는 일은 결코 쉬은 일이 아니다. 우리는 2천년전 예수께서 사시던 땅, 사회 분위기와 역학에 대하여 단지 몇가지를 알고 있을 따름이다. 그 맥락을 알아내야만 우리는 예수의 생애와 말씀과 활동이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맥락 안에서 뜻하는 바를 더 잘 알 수가 있다.
Ⅰ. 예수께서 사시던 땅
예수께서는 팔레스티나에서 사셨다. 팔레스티나는 길이가 240km, 가장 폭이 넓은 곳이 85km, 2만 평방 킬로미터인 작은 땅(경상남북도보다 조금 더 작은 규모)이다. 서쪽에는 지중해가 있고, 동쪽으로는 요르단강이 흐른다.
팔레스티나는 기후에 큰 영향을 주는 산맥 때문에 고지대와 저지대로 나누어진다. 사실상, 서쪽에서는 찬 바닷바람이 불어와 산지에 부딪쳐 비를 자주 내리게 하여 해안지대를 적신다. 그렇지만 산맥의 동쪽은 바닷바람을 받지않고, 그 결과 기후가 건조하고 아주 메마른 지역을 이루고 있다. 일굴 수 있는 땅은 북쪽 갈릴래아 지방과 요르단강 계곡에 있다. 유다지방은 산록지대로서 양떼를 기르는 목초지와 올리브를 가꿀수 있는 땅으로 되어 있다.
예루살렘 도시는 5만명의 주민이 살고 있었고, 지중해로 보면 해발 760m, 사해로 보면 해발 1,145m의 고원지대 맨 가장자리에 있다. 대명절이면 대략 18만명의 순례객들이 모여들었다.
Ⅱ. 예수시대의 사회
인간사회는 하나같이 경제, 정치, 이념 관계의 복잡한 망(網)에 의하여 서로 얽힌 사람들 및 집단들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가 예수의 인물됨과 활동을 정확히 알려면 그 때의 사회관계를 알아 볼 필요가 있다.
1. 경제
예수시대에 경제의 기초를 이루는 활동은 농업과 목축업(어업도 일부), 그리고 기능업이었다.
① 농업은 주로 갈릴래아에서 발전했다(밀, 보리, 콩, 채소, 무화과, 포도, 올리브 등).
② 목축업으로는 주로 유다에서 낙타, 소, 양, 염소 등을 길렀다.
③ 어업은 지중해, 갈리래아 호수, 요르단강에서 성했다.
·농업을 주로 하는 지방에서는 대부분의 주민이 소농(小農)으로서 작은 농토를 경작하였다. 그 밖에도 대지주들(원로들)도 있었다. 그들은 주로 도시에서 살면서 자기네 땅을 관리자에게 맡겨서 날품팔이 일꾼과 농노(農奴)의 노동력을 이용하여 부쳤다. 많은 경우 작은 땅을 부치는 소농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에서 자기네 논밭을 잡히고 대지주들한테서 돈을 빌려 썼다. 이렇게 하여 점차 몇몇 부자들의 손에 땅이 들어갔다. 마침내 대지주들에게서 땅을 빌려 농사를 짓고 그 수확물을 반타작하는 빈털터리 농민들이 많이 생겨나게 되었다.
·기능업은 도시와 농촌에서 다같이 발전하였으며, 특히 예루살렘에서 발전했다. 주요한 기능활동으로는 도자기업, 가죽을 다루는 직업, 나무를 다루는 직업(목공), 양모를 이용한 제사와 방직이 있었다. 이런 노동은 가족 생산을 중심으로 한 자영업으로 이루어졌고, 가업(家業)은 아버지에게서 아들에게로 이어졌다. 이런 기능공 외에 빵을 굽는 사람, 이발사, 고기장사, 물을 져 나르는 사람, 생산활동을 하거나 다른 일을 하는 노예도 있었다.
·농업과 기능업에서 생산된 모든 상품의 순환은 또 다른 커다란 경제활동, 즉 상업을 생겨나게 했다. 상업은 도시에서 더 많이 발전했고, 상권은 대지주들의 손아귀에 들어있었다. 시골에서는 상업이 별로 활기를 띠지 못했고 그 대신 물물교환이 뿌리 내리고 있었다.
·모든 상업활동은 세금체계에 의하여 통제되었다. 이같은 조세정책으로 유다 국가나 로마 국가는 상품순환을 독차지했으며, 엄청난 세금을 걷어 들였다. 이 세금은 세금 징수원들이 걷어 들였다.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상품을 나르는 데도 통행료가 붙었다. 그런 세금과 통행료는 예수 시대에 견디기 힘든 것으로 되었다.
·팔레스티나 경제를 이상과 같이 뭉뚱그려 살펴본 후, 우리는 예수께서 목공이셨고, 여러 제자들은 어부였고, 그 가운데 한 명은 세금 징수원이었다는 의미를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다.
·예루살렘에 있는 국가 기구는 온 나라의 경제에 대하여 강력하게 통제하였다. 국가는 국가자본을 끌어들여 독차지하는 외에도, 가장 큰 기업가 구실을 했다(성전, 왕궁, 기념관, 수로, 성벽 등을 세웠다). 그 가운데 성전이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①세금징수 : 성전세를 통하여 국가 생산의 대부분이 국가로 흘러 들어갔다.
②상업 : 순례자들의 필요를 채워주고, 주로 성전에 희생제물과 봉헌물을 바치는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상업이 이용되었다.
③사제들이 관리하던 성전의 보화는 국가의 보화였다.
·성전은 이렇게 모든 경제를 자기에게 집중시키는 외에도, 손재주가 있는 사람들, 주로 기능공들을 두고 있었다. 그런 식으로 성전은 백성을 착취하고 지배하는 중심지로 바뀌어 있었다.
·그러나 백성에 대한 착취와 지배는 나라 안 경제와 정치에서만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팔레스티나는 로마제국의 식민지였다. 로마제국도 이런저런 세금을 걷어갔다. 조공(인구세와 토지세), 팔레스티나를 점령한 로마 군인들을 유지하기 위하여 해마다 바친 기부금, 모든 생산물을 사고 파는 데 따른 세금이 있었다.
2. 정치
·팔레스티나에 대한 권력은 로마인들 손에 있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로마인들은 식민지의 내부적 자율을 존중했다. 유다와 사마리아는 로마 총독이 다스리고 있었지만, 내부 문제는 대사제가 유다 율법을 통하여 처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사제는 로마 총독이 임명하였다.
·유다와 사마리아의 내부 정치 권력의 중심은 예루살렘 도시와 성전이었다. 사실상 성전에서 대사제가 사제, 원로, 율법학자 71명으로 이루어진 '산헤드린'의 의견을 들어 백성을 다스리고 있었다. 산헤드린은 중대한 민·형사 사건, 정치문제, 종교문제를 결정하는 최고 법정이자 의결기관이었다. 산헤드린의 영향력은 모든 유다인에게 미쳤으며, 팔레스티나 밖에 사는 유다인에게도 미쳤다.
·그 밖의 도시에도 작은 정치기구가 있었다. 이 정치기구를 처음에는 대지주들이 움직였지만, 뒤에 가서는 율법학자들이 움직였다. 그와 똑같은 형태로, 시골에서도 원로들의 자문기구가 있었다. 그 자문기구에 원로들이 모여 공동체 문제를 결정하고 소송사건, 율법규정을 어긴 사건에 대해서는 법정과 같은 기능을 했다.
3. 정치 - 종교 집단
우리는 예수 시대의 사회에 다양한 집단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집단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정치, 경제, 종교와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당시 사회 구조와 틀에서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①바리사이파 :
이들은 성서를 기본적인 법 규범으로 정하고, 율법을 엄격하게 준수함으로써만 이스라엘의 운명, 즉 하느님의 구원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들은 모세의 율법을 절대화하고 랍비들이 율법에 덧붙인 수많은 세부규정들까지 철저히 지켰다. 유대인들에게 존경과 권위를 인정받던 이들은 다른 학파에 비해 사회적으로 명예를 누리던 계층이다. 그들의 생할방식이나 정신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가까워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언제나 예수께 반기를 들며 시기와 음모와 불신으로 참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이러한 위선행위를 책망하신다.
②사두가이파 :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한 고위제관 계층으로 바리사이파들과는 달리 로마제국의 정책을 지지하며 로마에 협력하는 입장을 유지했으므로, 이들은 유대인들에게 점차 영향력을 상실해 갔다. 이들은 모세오경만을 성서로 인정하고, 영적인 존재, 후세, 죽은 자들의 부활 등을 부인했다. 로마군의 원병을 끌어들여 성전방화(70년)를 자초했던 이들이 성전과 함께 몰락한 이래 바리사이파만이 유다이즘의 공식적인 대표로 남게 된다.
③열혈당파(혁명당) :
사두가이파의 입장과는 전혀 달리 로마와의 협력관계를 일체 거부한 집단으로, 그들은 납세를 거부하고 무력항쟁을 일삼았다.
④에세내파 :
역시 반로마제국주의로, 그들 중에는 세상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독신을 지키며 사해 북부 광야에서 수도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세례자 요한도 여기에 속했을 것으로 보는 학설이 있다.
이상 각 공동체의 지도자들과 유력자들은 율법학자들이었다. 바빌론 유배생활 이래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을 키워 온 이들은 성서 해석과 안식일의 집회를 주관하던 사람들이다. 일반 서민은 여전히 가난한 생활을 하며 야훼 하느님을 믿고, 예언의 성취와 이스라엘의 구원을 기다리고 있었다.
⑤율법학자 :
헬레니즘의 막강한 영향력에 맞서서 유다인의 전통적이고 독자적인 교훈을 율법을 통해 찾으려 하게 됨으로써 지위 상승된 신흥 상층계급이다.
율법학자단에 가입하고자 하는 사람은 오랜 기간의 정규 연구과정을 마치고 40세쯤 되어야 율법학자로서 서품을 받을 수 있었다. 율법학자에게는 종교법의 문제들에 대해서, 혹은 민사소송 때에 판결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이 있었으며, 특히 최고의회에 속한 바리사이파 율법학자 집단은 최고의회의 행정활동에 상당한 세력을 행사했을 뿐아니라 대다수의 민중들로부터 커다란 존경을 받았다. 유명한 율법학자들로는 힐렐, 샴마이, 가말리엘, 아키바 등이 있다.
⑥사마리아 사람들 :
사마리아 사람들은 고유한 의미의 유다교에 속해 있지는 않았지만, 팔레스티나 분위기를 띤 특징적인 집단을 이루고 있었다. 이들은 오히려 유다인보다도 모세 오경의 규정을 세심하게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사마리아 사람들은 모세오경을 뺀 다른 구약성서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예루살렘 성전도 참배하지 않았다. 그들이 보기에 경신례를 바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사마리아 세겜 가까이에 있는 가리짐산이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타엡"(되돌아오시는 분)이라 부르는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메시아는 다윗의 후손이 아니고, 새로운 모세로서 진리를 계시하고 마지막 시대에 만사의 질서를 잡을 것이었다. 유다인은 사마리아인을 이방인과 뒤섞인 주민의 후예라 해서 불결한 족속으로 여겼다.
4. 종교
예수시대 유다인의 종교는 성전과 회당이라는 기본적인 두 가지 극(極)에 집중되어 있었다.
①성전 :
성전은 이스라엘의 중심이었다. 모든 유다인,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유다인까지도 하느님께 예배를 바치기 위하여 성전으로 모여들어야 했다. 성전에는 유일하고, 거룩하고, 순수하고, 구별되고, 완전하신 하느님이 거쳐하고 계시다는 것이었다. 하느님 외에 인간 존재와 기타 존재는 본성상 속되고, 불결하고, 진부하고, 불완전하다는 것이었다.
정화될 수 있는 유일한 형태는 하느님께 가까이 가는 것이고, 인간은 하느님께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더욱 깨
끗해지며, 하느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더욱 불결해진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유다 사회에서 사제들이 영향력과 권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사제들은 하느님께 더욱 가까이 있고, 그 결과 정결하고 불결한 것을 그들이 결정하고, 또한 정결해지기 위하여 행해야 할 바 역시 그들이 정해주어야 했다. 백성에 대한 사제들의 이 같은 권위는 성전을 정당화하고 재강화하기에 이르렀다. 성전이 다만 종교의 중심에 그치지 않고, 경제 또는 정치의 중심도 되었다.
그 때문에 예수시대에 성전은 엄청난 재산(보물)을 갖게 되었고, 모든 통치활동이 성전과 산헤드린으로부터 출발하여 이루어졌다. 이 같은 방식으로 기도하는 집, 하느님께 봉헌하는 집인 성전이 거대한 은행처럼 변해 버렸고 정치권력의 자리로 떨어졌다. 달리 말하자면 종교가 백성을 짓누르고 빼앗는 도구로 변한 것이다.
②회당 :
성전은 이스라엘의 모든 활동의 중심이었다. 경신례를 바치는 곳이었다. 백성은 주로 대축일에 성전에 참배했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 종교의 중심은 작은 마을에까지 퍼져 있던 회당이었다. 회당은 백성이 모여 기도하고 하느님의 말씀과 설교를 듣는 곳이었다.
성년이 된 이스라엘 사람이면 누구나 회당에서 성서본문을 낭독할 수 있었고, 자기가 바라는 본문을 선택할 수 있었다. 성서본문을 낭독한 다음에는 그 본문을 다른 본문들과 연관지어 설명하면서 설교를 할 수 있었다. 설교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하느님을 찬양하고, 신앙에 도움이 되는 말을 하고, 백성에게 율법에 따라 살도록 초대했다.
회당에서는 사제가 특별한 기능을 행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회당이 전례를 거행하는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년이 된 사람은 누구나 회당에서 모임을 맡아 이끌수가 있었으나, 실제로는 성서를 해설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대부분 이끌었다.
일반적으로 회당은 지역공동체에 속해 있었다. 작은 마을에서 회당은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학교 역할도 했다. 더 큰 중심지에서는 회당 옆에 큰 강당을 세웠다. 예루살렘에 있는 몇몇 회당은 순례자들을 위한 숙박시설과 의료원까지 가지고 있었다.
예수께서는 1세기의 그와같은 역사적 맥락 안에서 태어나서 죽으셨다. 복음서를 읽을 때 우리는 당시의 사회, 경제, 정치, 종교의 맥락과 상황 안에서 예수의 활동을 올바르게 평가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예수의 말씀과 활동이 구체적으로 부각되어, 우리가 더 잘 알아듣게 되고, 오늘날 우리를 위한 의미를 띨 수가 있다.
<신약성서 일과놀이>
출처: 소중한 당신! cafe.daum.net/cci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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