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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음식디미방 / 300년 전의 요리책 1

비오동 2007. 9. 14. 15:44

이 책은 이리 눈 어두운데, 간신히 썼으니. 이 뜻 잘 알아 이대로 시행하고, 딸자식들은 각각 베껴가오되, 가져갈 생각일랑 하지말고. 부디 상치말게 간수하여, 수이 떨어 버리지 말아라

 

책을 쓴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책이 영원히 보관되기를 바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책을 잘 보관하라는 말을 책 속에 구구절절이 써놓는 경우는 드물다. 대체 무슨 책이길래 이렇게 소중하게 간직하라는 말을 거듭해서 당부하고 있는 것일까?
 

책의 이름은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이다. 앞에 음식이라는 말이 있어 음식에 관련된 책이라는 건 짐작이 가능한데, '디미방'이라는 말이 낯설 것이다. '디미'는 한자어다. 알지(知)에 맛미(味). 그리고 방법방(方). 고어에서는 '지' 발음을 '디'로 했기 때문에 지미방이 디미방이 된 것이다.
그러니까 음식디미방은 '음식의 맛을 아는 방법'이라는 의미로, 요리책이다.
 
요즘의 생각으로는 요리책이 뭐가 그리 대단한가 할 텐데, 이 책이 쓰여진 건 지금으로부터 330년 전인 1670년경. 당시에는 요리책이란 것이 흔한 책이 아니었다. 더욱이 이 책은 안동에 살던 양반집 마나님인 정부인 장씨에 의해 쓰여진 책으로 우리나라에서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에서도 여성이 쓴 최초의 요리책이다. 내용도 한글로 되어있어 쉽게 읽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직접 음식을 했던 여성이 자신의 경험을 그대로 기록해놓은 것이기에 330년 전 조선시대 양반가에서 즐겨 먹던 음식과 그 문화를 생생하게 들여다 볼 수 있다. 조선의 양반들은 무엇을 먹고 살았을까? 우선 이 책에 어떤 내용들이 담겨져 있는지부터 살펴보자.

 

300년 전의 요리책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져 있나?
 

    

 

백두현 (경북대 국문학과) 교수 : 이 책의 표지는 '규곤시의방(閨壺是議方)'이다. 규곤은 여자들이 거처하는 안뜰로 규방이라는 뜻이다. 시의방은 옳은 뜻을 풀이해서 쓴 방법이다. 표지에는 이렇게 규곤시의방이라 되어있는데, 한 장을 넘겨서 안을 보면 책이름이 다시 '음식디미방'이라 나온다.

 

음식디미방은 장씨부인이 직접 손으로 써놓은 기록이고, 표지에 있는 규곤시의방은 장씨부인의 남편인 이시명(李時明 1590~1674) 어른께서 이 책의 외형적인 품격을 갖추느라고 나중에 써서 종이에 붙인 것이다.

 

책의 맨 앞에 장씨부인의 남편이 쓰신 한시로, 새색시가 시집 와서 시부모님의 입맛을 몰라서 망설이고 있다는 내용이 소개가 된다. 본문에서는 만두법이라든지 여러 가지 탁면법 상화법 요리법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그리고 맨 끝에 장씨 부인이 흘린체로 직접 쓰신 발문이 있다. 발문의 내용은 "이 책이 이렇게 눈이 어두운데 간신히 썼으니 이 뜻을 잘 알아서 쓰인대로 시행을 하고 딸자식들은 이 책을 배껴갈 수는 있지만 가져갈 생각은 절대 하지말라. 잘 간수해서 떨어지지 않게하라."는 당부의 말을 적고 있다.

 

규곤시의방(음식디미방)은 장씨 부인의 아들인 존재(存齋) 이휘일
의 종택에 있다가 1958년에 경북대학교 도서관에 기증되었다. 그래서 그 기증된 책을 당시 경북대 국문과 김사엽 박사가 60년도에 논문을 써 발표를 하게 되어 세상에 알려진 것이다.
 
저자가 직접 쓴 '음식디미방'이라는 책이름은 책의 첫머리에 한글로 쓰여져 있다. 책에는 음식과 그 조리방법이 기록되어 있는데, 우선 눈에 띄는 것이 글씨체다. 종이 가득 써내려 간 글씨가 반듯해 책을 쓴 이의 정성과 성품이 느껴진다. 또한 책 내용을 보면 각각의 음식에 대한 조리과정이 자세히 기록되어있을 뿐만 아니라 음식을 종류별로 나눠서 체계적으로 정리해놓고 있다. 국수와 만두를 포함한 면병류 · 어육류, 채소와 과자를 모아놓은 소과류, 그리고 주류까지 그 종류가 모두 146가지다.
 

백두현 (경북대 국문학과) 교수 : 오늘날에 이 자료를 가지고 연구하는 사람들로 봐서는, 당시 사람들이 무슨 재료로 어떤 음식을 어떻게 먹었는가를 그대로 알 수 있는 생활문화사적 가치가 큰 자료다.

 

궁중요리연구가인 황혜성씨는 음식디미방을 처음으로 현대말로 풀이했다. 최근에는 음식디미방에 나온 음식 중, 46가지를 직접 만들어 슬라이드 촬영을 해 당시의 음식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했다.
 




  만두와 국수도 재료나 모양에 따라 가지각색이다. 석류모양의 만두인 석류탕. 지금의 찐빵과 같은 상화. 그리고 숭어로 만두피를 만든 숭어만두도 있다. 그런가 하면 앵두와 설탕을 조려 응고시킨 지금의 젤리와 같은 음식도 있다. 이외에 반찬도 다양하게 소개되어있는데, 특히 육류 중에는 개고기와 생치. 즉 꿩고기 요리가 많다. 농사에 소가 귀하게 쓰이던 시절, 흔한 개와 꿩이 육류음식을 대신했다. 이렇게 음식디미방에는 재료별로 다채로운 요리들이 담겨져 있다.
 
  

한복려 (궁중음식 연구원장) 선생 : 이 책에 나와 있는 음식들은 일상적으로 먹는 게 아니고, 별미가 나온다. 밥이라든가 이런 흔한 반찬종류는 별로 없고, 국수를 해먹어도 오미자국에 띄운다든지 석이가루를 썼다든지, 이런 귀한 재료를 많이 썼기 때문에, 특별한 날 맛있게 해먹는 게 많다.

 

복숭아 간수법: 독에 소금과 밀가루죽을 넣고 복숭아를 넣어 봉하면, 겨울에도 제철에 딴것 같으니라.

 

뿐만 아니라 음식디미방에는 음식을 보관하는 지혜도 있다. 복숭아를 밀가루죽에 넣어 두면 겨울에도 싱싱하게 먹을 수 있다고 적고있는데, 과연 효과가 있는 것일까?
 

노완섭 (동국대 식품공학과) 교수 : 복숭아를 밀가루풀에 넣는 건 아주 좋은 방법이다. 복숭아도 호흡을 하면 영양이 소모되고 수분이 날라 간다. 그러니까 이걸 밀가루풀에 집어넣으면 빠져나가는 수분을 막아 주고 또 설사 수분이 빠져나가더라도 흡수가 된다. 그 다음에 어차피 호흡하면 영양소가 소모되니까 밀가루풀에서 탄수화물이라는 영양소가 복숭아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왜냐하면 복숭아속에 있는 것도 주로 탄수화물이기 때문. 그러니까 그게 빠져나가더라도 풀에 있는 영양소가 들어가게 된다. 말하자면 복숭아와 밀가루풀 사이에 영양의 균형을 맞춘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주 현명한 방법이다.

 

가지 간수법 : 서리 내리기 전에 가지를 따 꼭지를 뽕나무 재에 묻어 두면, 변치 않고 새것 같으니라.

생포(전복) 간수법 : 생전복을 참기름 단지 속에 넣으면 오래 두어도 새것 같으니라.

 

가지를 보관할 때에는 뽕나무재에 넣어 두라고 적고 있는데 이는 재의 살균력을 이용한 것이며, 생전복을 참기름에 넣는 건 공기를 차단시켜 전복을 싱싱하게 보관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지금의 비닐하우스와 같은 방법을 이용해 겨울철에 채소를 길러 먹는 방법이 소개되어 있다. 겨울에도 야채와 과일을 즐기기 위한 지혜가 발달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글은  KBS 역사 스폐셜'300년전 여성군자가 쓴 요리백과-음식디미방' 1999.12.18 방송분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출처 : 크늘채
글쓴이 : 크늘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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