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여자들은 남자들과 같은 교육을 받지못했다. 남자들이 사서삼경(四書三經)을 배울 때 여자들은 여사서(女四書)라고 해서 여자들이 지켜야 할 법도와 예절을 배웠다. 그런데 대학자의 집안에 무남독녀로 태어난 정부인 장씨는 집안의 분위기와 타고난 총명함으로 인해 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그 수준도 높았다. 일반적으로 선비들의 교육과정 중 최고의 수준이라는 시경과 서경까지 터득했다고 한다. 이러한 학식이 뒷받침이 되었기에 이런 체계적인 요리책을 남길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 이 음식디미방이 나오기 전에 요리책이 없었던 건 아니다. '수운잡방(需雲雜方)'이라는 요리책은 음식디미방보다 100여년 전인 1540년에 탁정정 김수(濯淸亭 金○)라는 사람이 쓴 책이 있다. 그리고 '도문대작(屠門大嚼)'으로 1611년 바닷가로 귀양 간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許筠)이 유배지의 거친 음식들을 먹게 되자, 전에 먹던 좋은 음식을 생각나는 대로 적은 책이 있다. 이 책들은 모두 한문으로 되어있을 뿐 아니라 음식에 대한 간단한 소개정도에 그치고 있다.
그런데 음식디미방은 146가지 음식의 조리과정을 아주 자세하게 설명해놓고 있다. 그러니까 이 책은 그 이전의 책들과는 달리 조리방법에 대한 정보를 주는 본격적인 조리서인 것이다. 더욱이 각각의 조리과정에 대한 설명이 어찌나 자세하고 구체적인지 지금도 이 책을 보고 그대로 따라 할 수 있을 정도다. |

한복려 : 탁면이라는 것은 녹두로 녹말을 만들어서 그걸 화채로 만들어서 먹는 방법이다. 오미자와 깨가 있어서 그 국물에 만드는 거다. |


녹두를 맷돌에 쪼개, 물에 담궈 많이 불으면, 껍질을 벗기고 맷돌에 갈아라
탁면법의 처음은 녹말가루를 만드는 방법부터 시작된다. 녹두를 물에 불려 껍질을 벗긴 뒤 맷돌에 갈으라고 적고 있다.
지금처럼 시중에서 쉽게 녹말가루를 구할 수 없던 때. 가루를 만드는 것은 중요하고도 어려운 일이었다. 때문에 국수나 만두 조리법에는 가루를 내는 방법을 조리법의 첫머리에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아주 가는 체로 받고, 다시 가는 모시베로 걸러 두라


녹두를 갈은 뒤엔 가는 체로 건더기를 걸러 내고 또다시 모시베로 걸러 내라고 적고 있다. 조리과정에 필요한 기구의 이름까지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책에 쓰인 방법대로 가는체와 모시베를 이용해 여러번 걸러내는 건 고운 가루를 내기 위한 것으로, 이 과정에선 특별한 조리기구를 써야한다. 음식디미방에선 단계별로 필요한 조리기구를 정확하게 써놓고 있어 그대로 따라 하기만 하면 된다.
한복려 : 음식디미방에는 조리할 때 어떤 재료를 쓰라는 것이 단계별로 되어있다. 그래서 체를 예를 들자면 여러 가지 종류가 나오는데, 체 입자에 따라서 고운 것. 그러니까 깁체 또는 총체라고도 하는데 또 중간체가 되겠고, 굵은 것은 어레미라는 것. 발을 어떻게 곱게 하느냐에 따라 체의 이름을 다르게 부르고 또 한가지는 이 발을 뭘로 만드느냐에 따라 총체 말총 만들었다든지 그런 표시가 있다. 어느 건 가루를 내릴 때 고물을 내릴 때 쓰지만, 녹말을 만들어야 할 땐 아주 고운 걸 내려야 할 땐 다른 주머니나 보자기를 쓴다. 그것에서도 베를 썼다든지 모시를 썼다든지 명주주머니를 썼다든지 그런 것도 명확하게 되어있어서 얼마나 과학적으로 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
뿌연 빛이 없이 가라앉으면, 맑은 물은 따라 버려라


가라앉은 가루는 식지에 엷게 널어 말려서, 다시 찧고 (체로)쳐서 가루로 (모아)두고


책에 소개된 대로 녹두를 갈아서 짜낸 물을 그릇에 담아두면, 하얀 액이 바닥에 가라앉는데 이것이 녹말가루다. 이제 가루를 말려서 찧으면 녹말가루가 된다.
쓸 때마다 가루 한홉에 물 너무 걸지 않게 파서 양푼에 한 숟가락씩 담아 뜨거운 솥물에 골고루 둘러 이내 익으면


다음은 녹말국수를 만드는 과정이다. 녹말가루 한홉을 물에 타 양푼이라는 용기에 담아 뜨거운 물에 익히라고 적고 있다. 음식디미방은 요즘의 요리책처럼 음식재료의 양까지 정확히 적고 있다.


찬물에 담갔다가 조각 조각 썰어라.
양푼은 지금의 쟁반과 같은 그릇이다. 양푼에 녹말물을 넣어 뜨거운 물에 익힌다. 익힌 녹말가루를 찬물에 담는 건 잘 떼어 내기 위해서다. 음식디미방에는 이러한 세심한 부분도 빠짐없이 기록돼 있다.


오미자를 물에 우려낸 뒤에 고운체에 받치면 오미자차가 된다. 여기에 국수와 함께 얼음을 넣으라고 음식디미방에는 쓰여 있다. 이것이 음식디미방에 소개된 탁면법이다. 그런데 탁면법의 마지막엔 또 한가지 정보가 덧붙여져 있다.


하오미자차가 없으면, 참깨를 볶아서 찧어 (체로) 걸러 그 국에 말면 토장국이라 느니라.
한복려 : 재미있는 건 여기에서 마지막에 오미자가 없다. "참깨를 갈아서 해라" 했다. 그게 바로 토장법이라고 나와 있는데, 깨의 색깔이 누릇하게 흙토자를 붙여서 토장법이라고 한 것 같다. 이 방법은 정말 본인이 경험하지 않고서는 이런 방법이 나올 수 없다. 생각해보면 새콤한 맛. 또 한가지는 고소한 맛 두 가지를 똑같은 재료를 넣어서 한다는 것이, 우리가 볼 때 얼마나 지혜로웠나 알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