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화랑의 후예(김동리)
◆ 이 작품은 김동리의 데뷔작으로 그의 소설의 경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 된다. 작가는 전통 세계를 소재로 하여 그 전통 세계의 현재적 위상을 탐구하는 작품을 많이 발표하는데, 이 소설에서 형상화하고 있는 전통성은 이른 바 ‘조선의 심벌’과 같은 황 진사의 정신적 전통이다. 황 진사에게 내포되어 있는 전통적 정신 세계의 허와 실을 구상화하는 것이 이 소설의 주제 의식이라 볼 수 있다.
◆ 이 작품의 구성은 다소 특이하다. 주인공 황 진사의 행동을 적절한 몇 개의 삽화로 나열하여 성격을 제시하려 한 점인데, 이것은 서술자와 서술 내용 사이의 거리를 유지하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 주인공 황 진사의 성품은 한마디로 대단히 부정적이다. 거들먹거리기만 하고 실속은 없고, 허풍쟁이에다가 위선적이기까지 하며, 명분을 중시하면서도 명분에 어긋난 행동을 서슴없이 하고서도 일말의 죄의식을 지니지 못하는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황 진사의 부정적 성품을 비판하고 풍자하려는 듯 보인다. 그러나 한편으론 황 진사를 부정적으로만 그리지 않는다. 허풍이나 허세로 보이는 행동의 저변에는 자존심이라는 정신적 올곧음이 있으며, 특히 과부와의 혼담을 거절하는 대목에서는 선비다운 일면이 보이기도 한다. 현재적 관점에서 보면 분명 시대착오적 인물이고 받아들이기 곤란한 행동양식을 보이고 있지만, 그것은 그것대로의 가치를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 것이며, 어차피 사라져 가게 되어 있는 것에 대한 연민의 정서로 작품을 썼을 가능성이 많다.
◆ 이 소설의 내레이터인 ‘나’의 태도 → ‘나’는 일제하의 지식인으로 새로운 학문과 세계관을 섭렵한 자로서 황진사의 이런 면이 용인될 리 없다. 그래서 처음에는 황진사를 경원시한다. 그러나 만남의 횟수가 증가할수록 그 심리적 거리는 단축되어 가는데, 처음 불쾌함의 감정이 그 다음에는 반가움으로 바뀌면서 황진사에 대한 태도가 우호적으로 바뀌어 간다. 결국 이 소설의 핵심은 지식인의 눈에 비친 전통 정신은 비판과 연민을 동시에 주는 것이라는 것이다.
◆ 이 작품은 전통적 의식의 일면을 드러내 그것을 희화화함으로써, 그것의 부정적 요소를 비판하고 있는 가운데, 그 부정성 속에 감추어진 긍정적 측면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한 애틋한 향수의 감정을 형상화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