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투성이의 경전
모순투성이의 경전
미셀 옹프레
일신교의 탄생 시기는 분명하지 않다. 기원전 13세기경에 일신교가 탄생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간혹 있지만, 장솔레르는 훨씬 나중인 기원전 4세기와 3세기경이라고 본다. 일신교의 탄생 시기는 불분명한 데 비해 계보는 상대적으로 분명하다. 일신교를 만들어낸 사람은 유대인으로, 이집트의 태양신 숭배에서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타민족에 생존을 위협받는 소수 민족을 결집 단결시키기 위한 고육책의 하나였다. 심사숙고해서 조작해낸 신화 덕분에 그들은 땅 없는 민족의 힘을 하나로 끌어 모을 수 있는 전투적이고 공격적이며 무자비한 하느님, 즉 전쟁 지도자를 탄생시킬 수 있었다. 이른바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신화는 똑같은 운명을 짊어진 한 민족의 실재(實在)와 실존을 떠받쳐주는 근거가 되었다.
그렇게 조작된 신화 중에서 수천 쪽의 경전이 만들어졌다. 그것이 20세기 전부터 인류 전체에 미친 영향을 생각한다면 그리 대단한 쪽수도 아니다. 초록색으로 장정한 고대의 다른 책들과 달리 성스런 책이란 이유로 회색으로 장정한 플레이아드 판을 예로 든다면, 구약성서에는 대략 3,500쪽, 신약성선는 900쪽, 꾸르안은 750쪽이다. 달리 말하면 5천 쪽이 약간 넘는 책 속에 모든 것이 담겨 있는 셈이다.
이 세 권의 책은 그야말로 모순투성이로, 앞과 뒤가 서로 정반대의 내용을 말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어떤 가치를 강조하고서는 바로 뒤이어서 정반대의 가치를 존중하라고 말한다. 모순을 없애고 일관성 있는 책을 만들기 위한 최종적인 정리 작업이 없었던 것 같다. 심지어 서로 비교해서 읽을 가치가 있다는 이유로 세 공관 복음서(共觀福音書: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를 결정할 때도 그런 고민은 없었던 듯하다. 따라서 유대인, 기독교인, 무슬림은 각자의 희망에 따라 토라, 복음서, 꾸르안을 읽으면서 각자의 필요에 따라 흑과 백, 낮과 밤, 선과 악을 정당화시킬 핑곗거리를 찾으면 된다.
전쟁광도 자신의 악행을 합리화시킬 수 있는 구절을 경전에서 찾을 수 있을까? 물론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그런 내용은 넘치도록 많다. 하지만 전쟁을 혐오하는 평화주의자도 정반대의 말을 어렵지 않게 찾아내서 평화를 사랑하라고 목청을 높일 수 있다. 그렇다면 인종 학살을 위한 전쟁을 정당화할 만한 구절도 찾아낼 수 있을까? 물론이다. 원래 경전이 그러기 위한 것처럼 여겨질 지경이다. 그럼 경전을 바탕으로 세계 평화를 호소하는 것은 가능할까? 거기에 꼭 맞는 격언들을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 반유대주의자의 히스테릭한 증오심은 어떨까? 기독교인이 손에 성경을 들고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경멸하고 멸시하는 게 정당한 일일까? 여성혐오자가 여성의 열등함을 역설하는 것은? 경전은 무엇이든 허락한다! 그러나 이 너절한 글더미 속에서 언제라도 정반대의 말을 찾아낼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라! 물론 양심을 포기하면서까지 증오와 살인과 경멸을 정당화시키는 사람들을 향해 따끔하게 훈계할 수 있는 구절을 찾아내는 것도 가능하다. 요컨대 완전한 이웃 사랑을 권유하는 구절만큼이나, 비열하고 추잡한 짓을 합리화하는 구절도 있다.
이것은 모두 지나치게 많은 사람이, 지나치게 오랫동안, 지나치게 많은 자료를, 자나치게 수정하면서, 지나치게 많은 글을 남긴 탓이다. 하느님의 영감을 받아 쓰여졌다는 이유로 성서 중의 성서로 꼽히는 세 권의 복음서에 수많은 글쟁이가 끼어들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세 복음서 중 어떤 복음서도 일관된 하나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가르치는 바가 서로 모순 된다. 심하게 말하면 제멋대로다. 복음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줄을 그어가면서 꼼꼼하게 읽는다면, 너무 간단하게 모순을 찾아낼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복음서를 읽는 사람은 거의 없다.
경전을 정말로 상세히 읽은 사람이 있을까? 그렇다면 경전을 읽는 동안 이성적 판단과 기억, 그리고 지성과 비판 정신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을 리 없다. 그저 책장만 넘긴다고 독서가 아니다. 독서란, 이슬람교 수도자처럼 그 자리를 뱅글뱅글 돌면서 구절을 암송하는 것도, 카탈로그를 뒤적이듯이 읽는 것도 아니다. 이야기책을 읽듯이 대강 읽는 것도 독서라고 할 수 없다. 진정한 독서는 '부분을 읽으면서 전체를 생각하는 것'이다! 이렇게 경전을 읽을 때, 누구나 믿기지 않는 모순을 찾아낼 수 있다. 2천년 이상이나 이 땅에 제국들과 국가들, 그리고 역사를 만들어온 세 권의 복음서의 내용 가운데 얼마나 많은 모순이 담겼는지를 찾아낼 수 있다.
출전; [무신학의 탄생-철학, 종교와 충돌하다]에서
미셀 옹프레 지음, 강주헌 옮김, 모티브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