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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12)흙집짓기 전파나선 원주 `흙처럼아쉬람` 고제순

비오동 2009. 10. 9. 14:22
  

 흙처럼 아쉬람으로 가는 길, 더위가 기승을 부렸지만 여름은 이미 긴 꼬리를 감추기 시작했다. 새로운 계절을 예비한 햇살이 들판으로 쏟아져 내렸다. 삼복이 지나면서 부쩍 자라난 벼 포기들은 우주와 대지의 기운을 빨아들이며 결실을 준비하고 있었다. 연세대 원주캠퍼스를 지나 충주 쪽으로 2㎞쯤 더 달리다 좌회전해 토지문화관으로 접어들면 원주시 흥업면 매지리 회촌마을. 멀리 짙푸른 산자락이 파도처럼 출렁거렸다. 마을을 지나 산 속으로 빨려들어 가듯 들어서니 왼쪽 산허리에 정겨운 흙집들이 말간 얼굴을 내민다. 여토(如土) 고제순 선생은 흙집학교 수강생들과 집짓기 수업 중이었다. 흙집 짓기가 바야흐로 막바지로 향하고 있었다. 이레간의 수업 중 오늘이 엿새째, 황토 찜질방 안팎 벽 쌓기, 문틀과 창틀 달기 등이었다. 작업 현장에서 이루어진 야전 인터뷰, 고 선생은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면서 수시로 작업현장으로 들락거렸다. 오전 9시30분에 시작한 인터뷰가 그의 거처에서 소박한 점심상을 물리고 난 뒤에서야 끝났다. 시계바늘은 오후 2시를 지나고 있었다. 

 

  

 

 

 -칼 포퍼를 전공한 철학자가 흙집을 짓는 사람으로 바뀐 데에는 절실한 계기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오스트리아에서 학위를 마치고 돌아와 1995년까지 대학에 출강을 했습니다. 정신없이 책에만 매달려 살았던 셈이지요.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제 삶을 돌이켜보게 되었습니다. 스스로에게 행복한가 물었고, 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죠. 무언가 잘못 살아왔다는 자각을 했습니다. 수십 년 간 정신노동에 치우쳐 살았습니다. 사람은 몸과 마음, 영혼이 조화를 이뤄야 하는 생명체입니다. 그런데 저는 몸도 별로 움직이지 않았고 영성도 일깨우지 못했습니다. 오로지 정신노동만 해온 기형적인 삶으로 일관해 온 것이지요. 머리만 복잡한 사람은 아는 것은 많은데 행동하지 않습니다. 제 삶이 그랬죠. 지행합일이 안 되는 삶에 스스로 실망하면서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 자기 모순적, 자기 분열적 나날이 고통스러워졌습니다. 그게 새로운 삶을 모색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외면적 안정보다 내면적 평화, 물질적 풍요보다 정신적 행복을 찾기 위해 삶의 방향타를 돌린 것이지요.  

 -선생의 말처럼 한갓 미물도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자립하는데, 인간으로서 제대로  서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충격을 받았겠습니다.

 ▶식주의(食住醫)는 생명을 영위하기 위한 삶의 기본 바탕입니다. 먹는 음식, 생활하는 공간, 치유하는 일 어느 하나 제 스스로 마련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삶의 기초가 너무 부실했던 것이지요. 홀로서기 능력이 전혀 되지 않고 타인에게 제 삶을 전적으로 의존해야 한다는 사실이 부끄러웠습니다. 몸과 마음과 영혼의 조화로운 생활과 식주의의 자립을 위해서 자기 혁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한 것이지요. 먼저 정신노동을 줄이고 육체를 부리고 영성생활을 하는 삶을 추구했습니다. 하루 24시간 중 잠자는 6시간, 식사하는 3시간을 뺀 15시간을 육체노동, 정신노동, 영성생활에 5시간씩 나눠 조화로운 삶을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식주의 자립을 위해 대학 강의를 그만두고 농사를 배웠습니다. 집짓기도 배웠고 자연의학도 공부했습니다.

 -그때 배운 집짓기가 이제 평생의 과업이 된 것이군요. 그런데 왜 집짓기입니까.

 ▶현대인들의 삶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특히 왜곡된 주거문화가 여러 문제를 유발하고 증폭시킵니다. 아파트를 중심으로 한 우리의 주거문화는 생명을 시들게 하고 병들게 합니다. 주거문화를 바꾸는 일부터 해야겠다는 절박감이 앞섰습니다. 그래서 2004년 흙집학교를 시작했습니다. 건축학은 전공하지 않았지만 잘못된 주거문화를 바로잡고 생명을 살리는 생태건축으로 제 삶의 방향을 튼 것이지요. 자연을 한번 돌아보십시오. 모든 생명체는 스스로가 집을 짓습니다. 벌이나 새들이나, 곤충의 애벌레까지 마찬가지입니다. 오직 인간만이 제 집을 남에게 맡겨 짓습니다. 자연 속 생명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온전한 삶을 위해서는 스스로의 식주의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집짓기 자체가 수행이라고 했는데, 아쉬람도 그런 의미에서 붙인 것이겠군요.

 ▶흙집을 지으면서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행복감을 느꼈습니다. 몸과 마음, 영혼이 조화를 이루면 행복해집니다. 집을 짓는다는 건 육체노동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생각하면서 손발을 움직여야 합니다. 집짓기 현장에는 이론과 실천이 따로 놀지 않습니다.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지행합일의 현장입니다. 일에 몰두하면 몸과 마음, 영혼이 평화로워지죠. 아쉬람은 수행처라는 의미입니다. 흙집학교는 집 짓는 테크닉만 전수하는 기술학교를 넘어서는 수행의 도량이라 것이지요.

 -다양한 생태 건축 중에서 특별히 흙집을 택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흙집을 택한 것은 흙이 모든 생명의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흙은 자체가 유기체이면서 수많은 생명을 길러내는 생명의 어머니입니다. 그래서 흙에서는 생명력 넘치는 좋은 에너지가 많이 나옵니다. 모든 걸 포용하는 흙은 사람의 인성도 부드럽게 합니다. 물질에 왜곡되고 문명에 피폐해진 마음과 정신을 회복시켜 줍니다. 흙의 포용력이라고 할까요. 흙집 짓기에 몰입하면서 '지금 여기에 살 수 있는' 게 너무 행복합니다.

 -생태적으로 우리는 굉장히 열악한 환경에 살고 있습니다. 일상의 주거환경이 살아 있는 공간과 거리가 멀고요. 편리라는 이름의 아파트 문화가 우리에게 너무 많은 것을 앗아간 것은 아닌지요.

 ▶물질과 성장 위주의 문명이 가져온 대표적 예가 아파트 문화입니다. 아파트는 효율적이고 내부구조도 편리하고 신속하게 지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파트는 반생태적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습니다. 살림집이 아니라 죽임의 공간이라는 것이죠. 사회적인 문젯거리로 된 아토피, 천식 등의 주원인이 아파트 생활입니다. 아파트의 주소재인 콘크리트는 생명을 시들게 하고 병들게 합니다. 일본 시네마대학의 나카오 교수는 '콘크리트 집에 살면 9년 일찍 죽는다'라는 책에서 아파트의 폐해를 낱낱이 고발합니다. 또 대규모 아파트를 짓기 위해서 자연을 훼손할 수밖에 없습니다. 산을 깎아내고 바다를 메웁니다. 시멘트를 생산하기 위해 산지도 망가뜨립니다. 백두대간 줄기에 멀쩡한 곳이 없습니다. 아파트는 생태적 재앙을 가져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생명을 살리는 주거를 외면하고 아파트를 선호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집에 대한 무지, 보금자리에 대한 무지를 먼저 들 수 있겠습니다. 미물도 스스로 집을 짓습니다. 그들에게 집은 생명의 일부입니다. 집과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인간은 집을 실용성과 편리성 측면에서만 생각합니다. 집과 그 안에서 사는 생명체와의 관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게 문제입니다. 집과 우리 일상의 관계를 제대로 생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집은 물질적 공간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소통하는 또 하나의 유기체입니다.

 -집을 생활의 공간, 살림의 공간으로 보지 못하고 재테크 수단으로 바라보는 데도 문제가 있지요.

 ▶그렇습니다. 집은 가족이 함께 살아가는 공간입니다. 우리 조상들에게 집이란 그 속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죽고, 일생의 삶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집은 단순히 잠자는 곳만이 아닌 온전한 삶의 터전입니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집의 본래적 기능보다는 돈을 벌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합니다. 지금은 아파트가 재테크 수단으로 각광받는데, 생명보다 돈을 더 중요시하는 잘못된 인식의 결과이지요. 그로 인해 자신 및 가족의 생명이 병들고 있는 줄 모르지요.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아파트는 생명을 병들게 하는 에너지를 내뿜고 있습니다. 당연히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인성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아파트에서 삭막함을 느끼는 것도 그런 연유입니다. 

 -어느 서양학자가 우리나라를 아파트공화국이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농촌에까지 아파트가 들어서니 아파트 공화국이라 할 만하지요. 하지만 1980년대 후반 본격적으로 건설된 고층아파트가 수명을 다하면서 여러 문제들을 촉발시키고 있습니다.

 ▶이미 고층아파트 재건축 문제에서 그런 조짐이 불거지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 지어진 초고층아파트는 앞으로 수십 년이 지나면 대책이 없습니다. 초고층 아파트는 장차 재개발 자체가 불가능할 겁니다. 건설업체에 돌아가는 재개발 메리트가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재개발을 하려면 아파트 소유주들이 건축비를 부담해야 하는데, 과연 모든 주민들이 그런 능력이 있으며 또한 합의가 이루어질지도 의문입니다. 그리고 아파트가 수명을 다했을 때 발생하는 엄청난 폐기물을 어떻게 할 것입니까. 그냥 방치하면 도심은 슬럼화 될 것입니다.  20~30년 뒤엔 노후 아파트가 개인적 사회적 국가적 골칫덩어리가 될 것입니다.

 -생태건축이란 여러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됩니다. 에너지 절약시스템이나 빗물 소재 대체에너지 등 자연에서 순환하는 건축시스템이 되어야 하는데요.

 ▶저는 생태건축의 제1 조건으로 건축 수명을 꼽습니다. 오래가는 집, 튼튼한 주택이 진정한 의미에서 생태건축입니다. 수명이 짧으면 그만큼 자주 나무를 베고 황토를 캐내면서 자연을 수탈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최소한 몇백 년은 가야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죠. 저는 500년은 가는 흙집을 목표로 합니다. 그러기에 수명이 50년 정도밖에 가지 않는 콘크리트를 사용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제가 주로 사용하는 집짓기 재료는 나무 흙 돌입니다. 나무와 흙은 습기와 물기만 차단하면 수명이 몇백 년 이상 갑니다. 돌도 거의 반영구적이지요. 그리고 이들 소재로 지어진 흙집은 수명이 다해도 자연으로 돌아가는 집이기에, 오염의 뒤끝이 없는 생태적인 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전통주택은 매우 생태적 주거 공간이라고 볼 수 있겠죠.

 ▶우리의 전통주택, 한옥은 매우 다양합니다. 기와 초가 귀틀 너와집 등이 있지요. 이들 건축의 공통점이 바로 흙으로 지은 집이라는 겁니다. 한옥은 수명이 다하면 자연으로 돌아갑니다. 자연과 순환이 가능한 것이지요. 단지 벽체가 얇아서 단열이 잘 안 되는 흠이 있습니다. 또 공간구조가 실용적이지 못한 것도 단점으로 꼽을 수 있겠군요. 하지만 장점이 훨씬 더 많습니다. 나무 흙 돌을 주소재로 해 자연과 소통하는 집이라는 게 한옥의 최고 미덕입니다.

 -전통 건축은 단열 등 몇 가지 문제만 해결되면 어떤 유형의 건축보다 훌륭한 주거공간이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제가 짓는 흙집은 전통 건축의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보완한 집입니다. 전통 흙집의 벽체와 천장, 창문과 출입문의 단열문제만 해결하면 훌륭한 살림집이 됩니다. 아까 현장에서 보았듯이 목재 골조가 완성되면 흙벽돌을 안팎에서 이중으로 쌓아 올립니다. 그리고 외벽과 내벽 사이 공간에는 참숯을 채워 넣습니다. 일반 한옥의 벽 두께가 10㎝인데 이 흙집은 40㎝나 됩니다. 천장에도 참숯과 황토를 깔아 단열효과와 함께 몸에 좋은 음이온을 방출하도록 합니다. 공간구조도 실용적으로 디자인하고, 다양한 용도의 흙집 모델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고층아파트도 흙집으로 짓는 날이 올 겁니다.

 -흙집학교 출신이 제법 되겠군요. 전국 곳곳에서 활약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번이 27기입니다. 지금까지 650명 정도를 배출했습니다. 교육과정은 이론과 실습을 병행하는 7박8일 코스인 정규반도 있고, 2박3일의 이론심화과정 특강반도 있습니다. 어떻게 알았는지 전국 각지 또는 해외에서도 손수 흙집을 짓는 것을 배우기 위해 찾아옵니다. 흙집 짓기를 배우러 오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생태적 사고를 가졌는데, 수백 년간 소임을 다하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흙집에 깊은 신뢰와 애정을 갖습니다. 각 기수별로 흙집 동호인회가 형성되어 흙집을 지을 때 동문들이 서로 품앗이를 합니다. 이곳 출신들 중에는 곳곳에서 흙건축사업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일주일만 하면 누구나 배울 수 있다고 하는데, 그렇게 쉽게 집짓기를 배울 수 있다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일주일 동안 손수 집을 지을 수 있는 방법과 철학을 배우게 됩니다. 기초부터 지붕마감까지 이론공부와 실습을 병행하여 배웁니다. 생명의 이치와 원리, 본질을 통찰하면 누구나 자신의 식주의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흙집학교 흙처럼아쉬람은 생명의 이치를 바탕으로 전문 건축가 없이도 건축할 수 있는 민중건축을 지향합니다. 그래서 누구나 스스로 손쉽게 지을 수 있는 흙건축 공법을 교육합니다. 자신의 가족이 사는 보금자리는 가능한 한 손수 짓자는 것입니다. 우리 조상들도 이웃과 함께 품앗이로 손수 집을 지었잖습니까.

 -지금 고 선생이 사는 집을 보면 도시의 아파트 못지않게 실용적 구조를 하고 있는데요. 거실 전면 넓은 창을 통해 보는 전망이 정말 좋습니다.

 ▶2000년 귀농해서 이 집을 직접 집을 지었습니다. 주재료는 자연소재인 나무 흙 돌입니다. 건평이 38평으로 6개월 동안 공사를 했습니다. 흙벽돌도 직접 찍어내고, 이 집에 생태적 마인드를 담기 위해 애썼습니다. 기초는 전통줄기초로 하고 자갈과 모래를 넣어 물다짐을 한 뒤에 자연석 주추를 놓고 기둥을 세웠습니다. 거실과 서재, 아이들 방에는 한가운데 1미터 정도 파서 숯을 채우고 그 위에 숯과 황토, 맥반석을 깔고 황토미장을 했습니다. 거실은 좋은 기운이 모이는 피라미드 원두막 구조입니다.

 -그렇게 집을 짓고 나니 세상이 달라져 보이지 않던가요. 집을 짓는 행위에는 세상의 이치가 다 들어가잖아요.

 

 ▶손수 흙집을 지으면서 물론 육체적으로는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흙집짓기가 새로운 자기공부, 자기 수양, 자기 수행의 좋은 도량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손수 흙집을 지으면서 삶에 대한 자신감을 얻은 것이 가장 큰 수확이었습니다. 앞으로 어떠한 삶의 어려움도 능히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내면 가득히 자리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흙집에 몇 년 살면서 건강이 매우 좋아졌다는 것이 저에게는 놀라운 체험이었습니다. 이런 경험으로 인해 흙집의 우수함과 흙집 짓기의 중요성을 널리 전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흙집 학교 '흙처럼 아쉬람'(http://www.mudashram.com  (033)766-7755)은 손수 흙집을 지으려는 분들에게 그간의 저의 흙집 짓기 공부와 철학과 경험을 나누는 도량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집을 짓는 이치와 삶을 사는 이치를 서로 나누는 소통의 장입니다.

출처 : 장병윤의 느티나무 그늘
글쓴이 : 느티나무 그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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