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방구리
풀방구리
풀방구리, 바로 이거로구나!
이걸 두고 풀방구리라고 하는구나!
나락이 익어 고개를 숙일 무렵,
늦은 물대기에 여념없는 내 시선을 문득 붙잡은 게 있었다.
나락 윗부분에 풀검불을 말아
마치 테니스공 만하게 뭉쳐놓은 것이었다.
어설픈 농군이라도 언제 한 번은 본듯 했다. 하지만
손을 뻗어 보기는 처음이다.
새둥지일까? 지금 새가 알을 낳을 철이 아닌데
풀검불을 손에 넣고보니 속에 움직이는 게 있다.
웬걸 온기 같은 게 전해져 온다.
곱게 풀방구리 속을 열어보았다.
아, 붉은 흙빛
들쥐 새끼였다.
나락 대궁이가 비스듬이 누운 것으로 보아
어미 들쥐가 부지런히 오르내렸는가 보다.
다른 짐승의 침해를 피하려고 이렇듯 솜씨좋게
새끼를 이 나락 대궁이 위에 얹어 놓은 것이지만
지금 어미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내 발자국 소리에 놀라 숨었을까?
그런데, 왜 녀석들이 밉지도 흉해보이지도 않는 것일까?
두 마린지 세 마린지, 살피다가 안쓰러워
이내 덮었건만, 기어이 한 녀석이 기어나오고 마는데
눈도 채 떨어지지 않은 녀석이
깊이 자던 잠을 갓 깨었나 보다.
어릴 적 유난히 잠이 많고 깊었던 나였기에
그 모습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머리를 턱 걸쳐놓고 엎드린 품이 그랬다.
이걸 어쩌나, 제 스스로 도로 들어갈 낌새가 아닌데
그냥 둘까, 새들이 날아와 물어갈 텐데
이놈들이 자라면 논두렁에 구멍을 파고
부지런히 이삭을 물어들이며 겨울을 날 게다.
그런 생각으로 물끄러미 보던 중에
바람이 불고 나락 줄기가 몹시 흔들린다.
보기가 안쓰러워
풀방구리 속으로 도로 집어넣어 주어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그러나 어쩌랴
녀석이 나락 대궁이에서 미끄러져 내리고 만 것을.
눈도 감은 채 녀석은 기어 달아나고 있다.
풀검불 위를 애써 기어가는 품이 제법이다.
털도 덮이지 않은 몸이 오늘 밤을 어찌 날까?
어미를 찾아갈 테지만, 만날 수 있을까?
녀석은 곧 사라지고 말았다.
이제라도 그냥 두는 것이 상책이었다.
새끼 들쥐가 가여웠지만,
그건 또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내 모습이기도 하였다.
비오동
2009.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