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동 2009. 9. 26. 23:13

 

풀방구리

 

 

 

 

 

 

 

 

풀방구리, 바로 이거로구나!

 

이걸 두고 풀방구리라고 하는구나!

 

 

나락이 익어 고개를 숙일 무렵,

 

늦은 물대기에 여념없는 내 시선을 문득 붙잡은 게 있었다.

 

나락 윗부분에 풀검불을 말아

 

마치 테니스공 만하게 뭉쳐놓은 것이었다.

 

어설픈 농군이라도 언제 한 번은 본듯 했다. 하지만

 

손을 뻗어 보기는 처음이다.

 

새둥지일까? 지금 새가 알을 낳을 철이 아닌데

 

풀검불을 손에 넣고보니 속에 움직이는 게 있다.

 

웬걸 온기 같은 게 전해져 온다.

 

곱게 풀방구리 속을 열어보았다.

 

 

아, 붉은 흙빛

 

들쥐 새끼였다.

 

 

 

 

나락 대궁이가 비스듬이 누운 것으로 보아

 

어미 들쥐가 부지런히 오르내렸는가 보다.

 

다른 짐승의 침해를 피하려고 이렇듯 솜씨좋게

 

새끼를 이 나락 대궁이 위에 얹어 놓은 것이지만

 

지금 어미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내 발자국 소리에 놀라 숨었을까?

 

 

 

 

 

그런데, 왜 녀석들이 밉지도 흉해보이지도 않는 것일까?

 

두 마린지 세 마린지, 살피다가 안쓰러워

이내 덮었건만, 기어이 한 녀석이 기어나오고 마는데

 

 

 

눈도 채 떨어지지 않은 녀석이

 

깊이 자던 잠을 갓 깨었나 보다.

 

어릴 적 유난히 잠이 많고 깊었던 나였기에

 

그 모습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머리를 턱 걸쳐놓고 엎드린 품이 그랬다.

 

 

이걸 어쩌나, 제 스스로 도로 들어갈 낌새가 아닌데

 

그냥 둘까, 새들이 날아와 물어갈 텐데

 

이놈들이 자라면 논두렁에 구멍을 파고

 

부지런히 이삭을 물어들이며 겨울을 날 게다.

 

그런 생각으로 물끄러미 보던 중에

 

바람이 불고 나락 줄기가 몹시 흔들린다.

 

보기가 안쓰러워

 

풀방구리 속으로 도로 집어넣어 주어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그러나 어쩌랴

 

녀석이 나락 대궁이에서 미끄러져 내리고 만 것을. 

 

눈도 감은 채 녀석은 기어 달아나고 있다.

 

풀검불 위를 애써 기어가는 품이 제법이다.

 

털도 덮이지 않은 몸이 오늘 밤을 어찌 날까?

 

어미를 찾아갈 테지만, 만날 수 있을까?

 

녀석은 곧 사라지고 말았다.

 

 

 

 

이제라도 그냥 두는 것이 상책이었다.

 

새끼 들쥐가 가여웠지만,

 

그건 또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내 모습이기도 하였다.

 

 

 

2009.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