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 농사의 교훈
어설픈 농사의 교훈
농사를 시작한 지가 어언 세 해 째다.
농사래야 그저 취미나 장난같은 수준, 진짜 농부가 웃을 모양새다,
본성이 부지런치 못한 사람이지만 내딴에는 그래도 제법 힘을 기울였다.
남들이 골프를 치러 간다면, 나는 논밭에 가려 했다.
비록 서성대다 돌아오더라도, 나는 그곳에서
자연의 큰 품에다 여러가지로 복잡한 심경을 풀어놓기도 하고
스스로 부족한 자신을 인정하며 돌아오는 게 행복했다.
기실 이렇게나마 농사를 시작하게 된 것은
선친께서 환우로 별세하시고 남기신 전답 때문이다.
조상들이 남긴 전답을 이내 팔아버릴 수도 없는 것은
조상과 선친, 그리고 무엇보다 노모를 생각해서였다.
노친네에게는 정든 것이 사라지는 아쉬움보다 더한 상처가 어디있을까.
또한 내게도 부모가 남기신 살림이란 곧 부모의 살이요 피나 다름없는 것을.
그래서 공자께서는 부모가 돌아가시면 삼년동안 부모가 하신 일을 거스르지 않고자
그 행적을 살핀다 했던가.
어쨌든, 첫 해 고구마 농사로 뜻밖에 작은 재미를 붙였고,
이듬해는 벼농사로 제법 맛보기를 했었다.
하지만 실패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듬해 고구마 농사는 비닐덮기를 잘못한 탓으로 완전 폐농이었으며,
지난 해 심은 묘목들도 올해 내 몸이 여의치 않은 바람에 관리가 되지 않아
풀밭에 묻다시피 했다.
농사란 게 결코 그저 지어지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농사로 거둔 거라면 실패를 통해 깨달은 바가 곧 가장 큰 소득이다.
계절을 알고 생명의 때를 알아 갈고 심고 돌보고 거두는 일,
모든 일이 때에 이르거나 늦거나 건너뛰거나 해서 안된다는 것,
이것이 농사일에서 깨달은 바다.
올해도 벼농사가 가을에 이르고 보니 부실하여 안타깝다.
다른 논의 벼들은 실하게 고개를 숙였건만,
내 논의 벼들은 이삭이 작고 가볍다. 아마도 속이 제대로 차지 못해서 그럴 것이다.
올해 수확은 작년의 절반에 못미칠지도 모르겠다는 걱정이 앞선다.
이렇게 된 것이, 결실기에 물을 대어주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 칠월 하순에 내 몸이 병원 신세를 졌던 탓이다.
그제는 장마 지나서 벼가 한창 이삭을 팰 무렵인데, 논에 물이 말랐던 거다.
농사를 지어보면서 인생을 유추하게 된다.
젊어서 충분히 정신의 자양을 흡수하지 못한 사람도
인생의 가을에 쭉정이가 되고 만다.
잘 여문 씨앗이 또 한 번의 식생을 마련하듯이,
정신의 자양으로써 스스로 알맹이가 된 사람만이
또 한 번의 인생을 마련하는 것이 아닐까?
천국이란, 극락이란 바로 그래서 나온 말일 터이다.
그게 진실이 아니라하더래도 이왕 죽어가며 가는 곳을 모르는 허허로운 인생이
믿어 볼 게 그거밖에 뭐가 있나. 허-허.
비오동
2009.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