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정진/논어

[논어] 제 8 ~

비오동 2009. 9. 14. 16:33

제 8 장 [태백]

 

 

새가 죽으려 하면 그 울음소리가 슬프고,
사람이 죽으려 하면 하는 말이 착해진다고 하더군요.

 

윗사람이 귀중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용모를 단정하게 하여 난폭과 나태를 피해야 합니다.
얼굴빛을 반듯하게 하여 신뢰감을 주어야 합니다.
말을 신중히 하여 구차하거나 불합리한 경우를 당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 밖의 작은 일들은 하급 관리들에게 맡겨두시면 됩니다.

 

능력이 있으면서도 무능한 사람에게도 묻고,
많이 알면서도 모르는 사람에게도 물으며,
내용이 꽉 차 있으면서도 비어 있는 듯하고,
누군가 함부로 덤비더라도 굳이 따지지 않는다.
옛날에 내 친구 하나가 일찍이 이러했었다.

 

선비는 의지가 굳어야 한다.
맡은 바 책임이 무겁고 갈 길은 멀기 때문이다.
인을 실현하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삼았으니
이 또한 무겁지 않은가!
죽어서야 끝날 일이니 이 또한 멀지 않은가!

 

우리의 도를 독실하게 믿고
열심히 배워서 죽기를 각오하고 지켜야 한다.
위험한 나라에는 들어가지 말고,
어지러운 나라에는 살지 않는다.
천하에 도가 있으면 나가서 일하고,
도가 없으면 물러나 숨는다.
나라에 도가 있는데도 가난하고 천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나라에 도가 없는데도
부유하고 귀한 것 역시 부끄러운 일이다.

 

배움이란 따라잡지 못할까 봐 안타까워하고,
잃어버릴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

 

나는 우 임금에 대해서 별로 비판할 게 없다.
자신은 거친 음식을 먹으면서도 제사는 충실히 지냈고,
자신은 해진 옷을 입으면서도 제사 지낼 때의 복장은 갖추어 입었다.
자신은 허름한 집에 살면서도 치수 사업에는 온 힘을 쏟았다.
우 임금에 대해서는 내가 달리 비판할 게 없다.

 

 

제 9 장 [자한]

 

 

태재가 나를 아는구나! 
나는 젊어서 천했기 때문에 잡다하게 비루한 재주들을 좀 익혔다.
하지만 군자가 어디 재주가 많은 사람이겠느냐?
아니지. 많지 않겠지. 

 

 

내가 아는 게 있나. 나는 아는 게 없다.
하지만 비천한 사람이라도 나에게 물으면,
그 질문의 내용이 텅비어 신통찮더라도
나는 처음과 나중의 양쪽 끝을 잘 헤아려 힘닿는 대로 알려주었다. 

 

 

공자의 병이 깊어지자 자로가 제자들을 가신(장례위원)으로 삼았다.
병에 차도가 있자 공자가 말했다.
"이미 오래되었다! 자로가 이렇게 사람을 속인 지가.
나는 가신을 둘 수 없는데도 가신을 두려 하다니.
내가 누구를 속이겠느냐? 하늘을 속이란 말이냐!
나의 죽음을 가신의 손으로 치르느니
차라리 너희 제자들의 손으로 치르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느냐?
내가 요란스럽게 장례를 치를 형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길에서 죽기야 하겠느냐?

 

 

흐르는 시간이 마치 강물과 같구나.
밤낮을 쉬지 않네.

 

 

뒤에 태어난 사람들을 두려워할 만하다.
그들의 장래가 요즈음 사람만 못하다고 어찌 단정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한편으로) 마흔 살, 쉰 살이 되어도 세상에 이름이 나지 않는 사람은
두려워 할 것이 없다.

 

 

원칙에 맞는 말은 당연히 받아들이겠지만
실제로 고치는 것이 귀한 일이다.
완곡하게 이끌어주는 말은 듣기에 좋지만,
그 속뜻을 새겨들어야만 귀한 것이다.
좋아하기만 하고 속뜻을 새길 줄 모르며,
받아들이기만 하고 고칠 줄 모른다면
나도 그런 사람은 어떻게 하지 못하겠다.

 

 

(옛날에 이런 시가 있었다.) "산앵두나무의 꽃이 산들산들 흔들리는구나.
어찌 그대를 생각하지 않으리오마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구나."
 공자가 말했다. "갈 생각이 없는 것이지 길이 먼 것이 무슨 문제이겠는가."

 

 

 

제 10 장 향당

 

 

재계할 때는 반드시 (도복과 같이) 베로 만든 밝은 옷을 입었다.
그리고 평소 먹던 음식을 바꾸었고, 잠자리도 옮겼다.

밥은 곱게 찧어서 한 것을 좋아했고,
생선과 고기는 가늘게 썬 것을 좋아했다.
쉰 밥과 맛이 간 생선, 그리고 상한 고기는 먹지 않았다.
색깔이 흉한 것과 냄새가 고약한 것도 먹지 않았다.
설익은 것도 먹지 않았고, 식사 때가 아니면 먹지 않았다.
반듯하게 썬 것이 아니면 먹지 않았고,
음식에 어울리는 장(된장)이 없으면 먹지 않았다.
고기는 많이 먹더라도 밥보다 많이 먹지는 않았다.
단, 술은 끝도 없이 마셨는데
그렇다고 정신 없이 취할 지경까지 마시지는 않았다.
시장에서 사온 술과 포는 먹지 않았다.
생강은 꼭 챙겨 먹었지만 많이 먹지는 않았다.
나라의 제사에 참여하고 받아 온 고기는 날을 넘기지 않았고
다른 제사 고기도 사흘을 넘기지 않았으며,
사흘을 넘긴 것들은 먹지 않았다.
밥을 먹을 때나 잠자리에서는 말을 하지 않았다.
비록 거친 밥과 나물 국이라도 꼭 감사의 예를 취했는데
마치 재계하듯 했다.

 

 

 

 

제 11 장 선진

 

옛날의 문물은 촌스럽다고 하고
요즈음의 문물은 세련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나보고 이 중에 선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옛것을 고르겠다.

 

안회는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아니다.
내 말을 듣고 기뻐하지 않은 적이 없다.

 

안회가 죽었다. 공자의 제자들이 후하게 장례를 치르려고 했다.
공자가 말했다. 아서라.
하지만 제자들이 장례를 후하게 치렀다.
공자가 말했다.

 

 

제 12 장 안연

 

 

자기를 이기고 예로 돌아가는 것(극기복례)이 인이다.
어느 날 자신을 이겨 예로 돌아가면 천하가 모두 너의 인을 칭찬할 것이다.
인이란 [이렇듯 자신을 이기는 과정을 통해]

자기 스스로에게서 나오는 것이지 남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마라.

 
군자란 근심이 없고 두려움 또한 없는 사람이다.

스스로 안을 살펴 부끄러움이 없다면 근심하거나 두려워할 게 뭐 있겠느냐.
 

사마우가 걱정스레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형제가 있는데 나만 혼자야.
자하가 말했다.
내가 듣기에 죽고 사는 것은 운명이고,

부유하고 귀하게 되는 것은 하늘에 달려 있다고 했네.
군자가 일을 신중하게 하여 실수하지 않고,

사람을 대할 때 공손하게 예로 맞는다면 온 세상이 다 형제라고 할 수 있겠지.
군자가 어찌 형제 없다고 걱정하는가?

 

군자는 바람과 같고 소인은 풀과 같은 것입니다.
풀 위로 바람이 불면 바람 부는 대로 기울어지게 마련이지요.

 

번지가 공자와 함께 무우대 아래를 유람하다가 물었다.
덕을 높이고, 다른 사람의 드러나지 않는 원망을 해소해주며,

미혹됨을 분별하는 방법을 감히 여쭙니다.
공자가 대답했다. 참 좋은 질문을 했다.

일을 먼저 하고 소득은 나중에 얻는다면 이것이 덕을 높이는 것이 아닐까?
자신의 잘못은 비판하되 남의 잘못은 따지지 않으면 드러나지 않는 원망을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
하루아침의 분노를 참지 못해 [이성을 잃어]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고

그 영향이 부모에게까지 미치게 하면 그게 미혹됨이 아닐까?

 

사람을 아는 것이 지이다.

반듯한 사람을 뽑아 굽은 사람 위에 두면 굽은 사람도 반듯하게 만들 수 있다.
 (순 임금이 천하늘 다스릴 때 무리 속에서 고요를 뽑아 썼더니 나쁜 사람들이 사라졌다네. 탕 임금이 천하를 다스릴 때 무리 중에서 이윤을 뽑아 썼더니 나쁜 사람들이 사라졌다네.)

 

충심으로 권고하고 잘 이끌어주되, 듣지 않으면 그만 그치면 된다.
[안 되는 일에 매달려] 모욕을 자초할 필요는 없다.

 

 

 

 

 

 

 

 

주1) 태백은 주 왕조의 선조인 고공단보의 맏아들이다. 고공단보에게 아들이 셋 있었는데, 태백, 중옹, 계력이 그들이다. 고공단보는 셋째인 계력에게 왕위를 주려고 했다. 태백은 아버지의 뜻도 받들과 막냇동생의 역량도 살펴 미리 왕위를 포기하고 동생 중옹과 멀리 구오로 가버렸다. 조선 시대에 영민한 동생 세종에게 왕위를 양보한 양녕대군의 경우와 흡사하다. 차이가 있다면, 양녕은 폐세자가 되려고 일부러 상황을 연출하며 시위했지만 태백의 경우는 백성들조차 모르게 했다는 점이다. 이렇게 권력에 집착하지 않고 담백한 태도를 보인 태백을 공자는 덕이 지극하다며 매우 높이 평가하고 있다. 공자의 권력관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