深耕細作/마음을 통하여 세상을

달구벌고등학교에 주는 글 - 한 무리의 길 잃은 양

비오동 2009. 9. 9. 00:49


 

 

 한 무리의 길 잃은 양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만일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마태복음 제18장 12~14절

 

  저의 딸 은길이를 달구벌로 보낼 무렵, 아내를 따라간 교회에서 이 성경구절을 마주쳤습니다. 열여섯 어린 여식을 남들처럼 곁에 두지도 못하고 타지로 떠나보내는 심정이었으니, 대안학교의 길이 뚜렷한 길로 보이지 않고 자꾸만 외지고 후미진 길만 같이 느껴지고, 어린 것이 마치 길 잃은 양처럼만 가엽게 여겨졌던 모양입니다.

  그 때부터 저는 성경 속의 이 <길 잃은 양>을 자주 읽고 그 뜻을 헤아려 보곤 하였는데, 자꾸 읽다 보니, 뜻이 조금씩 헤아려지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찾고서 더 기뻐하시는 것은 다 까닭이 있었습니다.

  아흔 아홉 마리 양은 늘 무리의 뒤만 따를 뿐이었습니다. 그들이 길을 잃지 않은 것은 오로지 그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 그들은 산 속에 두어도 그들 스스로는 어디로도 가지 아니합니다. 길 잃은 한 마리 양이 길을 잃은 것도 다른 까닭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리 저리 풀을 뜯던 그 양은 홀연 무엇인가에 이끌려 겁 없이 산을 넘어 저쪽으로 나아갔을는지도 모릅니다. 또는 늘 다니는 길 한 쪽으로 새 길이 있는 듯하여 그 길로 한번 가보고 싶었을는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그 양은 분명 다른 양들과 내면이 달랐던 모양입니다. 꿈이 있었거나 호기심이나 모험심이 많은 그런 양이었을까요. 

  혹, 어리석은 목동이라면 어떻게 했을까요. 그는 매우 속이 상해 길 잃은 양을 향해 화를 내었을 것입니다. “넌 도대체 얼마나 멍청한 놈이기에, 주인을 잃고 헤매다 이제야 오는 거야!”하고 말입니다. 이런 목동은 양치는 일에서 결코 사랑의 이치를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참된 사랑의 길을 찾아 본 사람이라면 길 잃은 양의 마음을 헤아릴 것이며, 그를 되찾는 기쁨을 또한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길 잃은 양이 부단히 길을 찾고 있을 것이니, 그를 생각하면 목동이 또한 어찌 그 양을 부단히 찾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목동이 그 한 마리 양을 버리고 갈 수 없는 것은 바로 그의 생각이 이런 데까지 미쳤기 때문입니다. 단지 한 마리 양이 길을 잃었는데도 아흔 아홉 마리 양을 산에 두고 가서 그 한 마리 양을 찾는 것은 진정한 사랑의 이치가 바로 그와 같기 때문일 것입니다.

  대안학교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무리의 엉덩이만 보며 가던 길로만 가는 아흔 아홉 마리 양이라면 결코 우리가 선택한 대안학교가 아닐 것입니다. 대안학교란 진정 한 마리 길 잃은 양이 아니겠습니까? 비록 지금은 헤맬지라도, 언젠가는 그가 찾은 길이 우리 모두를 인도하는 길이 될 날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길 잃은 양이 길을 찾아 되돌아 올 것을 믿어주며 참고 기다려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또한 우리가 기쁨으로 그를 맞이해 준다면 그 한 마리 길 잃은 양이 장차 나머지 아흔 아홉 마리 양을 이끄는 길잡이 양이 되어 우리를 기쁘게 할 것입니다.  

 

  지금, 한 무리의 <길 잃은 양>

  우리 아이들만아니라, 선생님들과

  학부모님들--우리 달구벌 가족 모두가

  아닐는지요.

 

                                                                             - 두 분 선생님의 일을 생각하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늦은 밤에 씁니다.

 

 

 

2009